울고야 말았다

by naniverse

진료실에서 울고야 말았다. 첫번째 암 진단때도, 두번째 암 진단때도, 또 다시 재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때도 진료실에서는 울지 않고 참았다. 어쩐지 울면 지는 것 같아 꾹꾹 참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오늘 나는 울었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여러번 아픔을 주어지는 것을 보니 어쩐지 신은 없는 모양이다. 이제 겨우 살만하다고 하고 있던 차였다. 앞으로 일년만 버티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는 나였다. 도대체 뭘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길래 이미 다 도려냈는데 또 다른 암이 생긴걸까? 안다. 잘알고 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누군가는 원망하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내게 또 한번의 시련을 주다니 세상이 날 억까한다.


시계가 멈췄다. 당장 내일부터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당장 이번주에 잡혀 있는 사촌동생들과의 대만여행, 7월에 잡혀 있는 엄마,아빠와의 스위스 여행. 어차피 수술은 7월말 이후로 미뤄야 한다. 이 마음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들이 도대체 무슨 여행이 되려는지. 해외여행을 떠나야해서 6월 중 수술을 못하겠다고 하면 교수님은 또 뭐라고 하시려나? 엄마와 아빠에게 벌써 4번째 수술을 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상상해봤지만 역시 무덤까지 가져가야하는 일이다. 불행은 나눠야 가벼워질텐데, 가족들에게 모두 숨긴 채 혼자 짊어지려니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수술 후 회복은 어떨지에 대한 걱정보다, 엄마 아빠에게 들키지 않고 수술과 회복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니 문제는 문제다. 솔직하지 못하고 아무일 없는 듯 사는 척을 하는게 오히려 독이 됐으려나? 한번에 가족들에게 두번째 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는데 어쩐지 잘못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오히려 고맙다고 오만을 떨었다. 2개의 암과 동반해야 하는 삶이지만,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2개의 암과 만나면서 인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살아내야하는지 배울 수 있어 난 행운아라고 애써 위로했다. 하지만 또 다시 알게 된다. 다 허튼소리다. 암에 걸리고 또 걸려 수술받고 치료를 받고 매번 정기검진때마다 잔뜩 쫄아서 벌벌 떠는 이런 인생이 뭐 그리 행복할까. 과연 이번이 끝일까? 이 수술이 끝일까? 오랫만에 죽음이 한 걸음 내게 가까이 온 것 같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항암은 안해도 되니 감사하다고 생각하자고 잠시 생각했다가도 괜찮은 척 그만 하자 지친다 싶다. 진짜 난 괜찮은 적이 있기는 했던 것인지, 괜찮다고 해야 괜찮아 질 것 같아 그저 기도처럼 되뇌였던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내일이, 다음달이, 내년이 그려지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이 또 돌아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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