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고 나를 만나다
“**님은 아직 싱글이시라면서요? 아침마다 필라테스 오시는 것 보니 재택근무 하시나봐요? “
며칠 전 필라테스 원장님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 **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회원들이 있더라구요! **님께 직접 물어보라고 했어요 ㅋㅋ “
오호라 당신들이었군요! 드디어 잡았다!!
몇 달가량 함께 운동을 한 회원들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질문이 시작됐다.
“아....재택근무 비슷해요 “ ...”
“재택근무 아니시면 프리랜서신가보다!!! 그쵸!!! “
“아...프리랜서.....맞아요 그런거예요 “
“프리랜서도 아니세요?? 그럼...잠시 일을 쉬고 계세요?
“아....그냥 좀 일찍 은퇴했어요 “
“오!!!! 그럼 파이어족이세요?? 아악!!! 내리지 마세요!!!! 우리 다음에 더 얘기해요!! 꼭이요!!! “
그녀들을 피해 엘리베이터에서 후다닥 내리며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군
5개월동안 치료를 병행한 반 백수 생활을 해왔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신없이 일어나 아침 일찍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고 집에서 뛰어 나가야 하는 일상이 17년만에 끝이 났다. 알람없이 일어나도 되는 아침이 좋았다.느지막히 일어나 편한 일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갔다. 오후에는 집앞 백화점 문화센터로 향해 이것 저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백수의 삶에 적응해나가는 중이었다.
결혼은 안했다는데 회사도 안가고 낮에 취미생활을 하는 40대 젊은 처자,
도대체 정체가 뭐래?
얼마 되지 않아 나를 향하는 묘한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일 아침과 낮에 취미생활을 같이 하는 이들을 내 정체에 대해 공금해지기 시작한모양이다.
“저는 전업주부예요. 24개월 된 아기가 있어요”
“저는 애가 초등학교에 다녀요. 저는 프리랜서예요”
“저는 오후에 스타벅스로 출근해요. 바리스타예요. 그래서 오전에 운동할 수 있어요”
대부분 가정 혹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는 본인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눈에 나는 꽤나 신선한 사람이었나 보다.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예요? 당신의 정체를 밝히시오
오롯이 자유의 몸이 됐다는 기쁨도 잠시,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나를 소개해야 순간을 마주했다.
병원, 금융기관에만 가도 “직업/소속”을 묻는 칸은 왜 있는지. 해외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왜 적어야 하는 걸까?
학생이요. 회사원이요. 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수십년간의 신분제에서 탈피한 나는 나를 소개할 적정한 단어를 찾지 못해 헤맸다. 그럼 일은 안하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럼 그냥 놀아요? 라며 진짜 궁금해하며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삶도 있어요. 라고 설명하는 것은 더군다나 어려웠다. .
백수입니다.? 백수라는 단어는 뭔가 조금 없어보였다.
파이어 족입니다.? 그러기엔 대단한 자산가가 아니었다.
잠시 일을 쉬고, 다른 곳으로의 이직을 꿈꾸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도 아니다. 나는 다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투자를 업으로 하는 전업투자자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보수적이었다. 당당하게 말하기에 아직 일렀다.
그렇다고 그저 잉여 인간이라고 나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생각은 없음으로
그럼 나는...?
변한 것은 속해있던 공동체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였다.
나는 오롯이 나란 사람으로 그대로였다. 하지만 단지 소속이 없어졌다는 작은 사실 하나가 나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내 정체는 곧 나의 소속이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7살 무렵부터 드디어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4년 전까지. 나는 언제부터 소속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었을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조금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졌다.
전세만료가 되기 전 이사를 하기 위해 잠시동안 쓸 돈이 조금 필요했다. 언제라도 대출이 필요하면 편하게 요청해주세요 라고 말했던 주거래은행에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나는 이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용도라도는 것이 내 개인의 신용이 아니라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의 신용을 말한다는 것도 회사에서 나오고서야 비로소 알게됐다. 내 소속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랬다. 스스로의 가치관, 취향, 생각보다는 그저 소속이 그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나 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나는 이제 없었다.
나를 말해 줄, 나를 소개해 줄, 나를 보호해 줄 그 어떤 껍데기도 없었다. 나는 세상에 발가벗겨진 채 혼자 서있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것의 도움 없이 남은 인생을 나 혼자 오롯이 서야한다는 것을 꺠달았다. 혼자가 됐고, 비로소 진짜 나와 만나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을 어떤 사람으로 소개하며 살고 싶은지 드디어 생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벌써 4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늘 긴장됐다. 오늘은 또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그런 자리가 불편하고 두려워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시간은 점차 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또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를 소개할 적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답답했던 순간도 잠시. 이제서야 안다. 고작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여전히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이 있을 뿐이다.나를 소개 할 소속이 필요해 만든 법인도 어쩌면 이제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백수다.
이른 은퇴자이기도 하다.
회사 다닐때의 연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전업투자자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며, 여행을 하며, 내 삶을 즐기는 잉여로운 인간이기도 하다.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저 나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나는 꼭 무엇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저 내가 내가 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어떠한 모습도 나다.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는 이제 그닥 신경쓰이지 않는다. 요즘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백수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