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이었다.

by naniverse

신입사원시절 뮤지컬을 같이 보러다니면서 알게된 동생이 있다. 벌써 20년지기다.


“누나는 어쩜 그렇게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을 안해? 내가 연락안하면 우리 관계는 끝이야~ “


그에게서 처음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살면서 어쩌면 여러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반드시 노력해야만 이어지는 일방적인 관계, 나와 친구들, 나와 지인들의 관계는 대부분 그랬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을 꽤나 즐기는 성격의 소유자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아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랫동안 먼저 누군가의 안부를 묻거나 만나자고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회사를 다녔던 17년 동안은 더 그랬다. 일주일에 5일은 꼬박 일에 매달려 살았다. 개인적인 약속 따위를 평일에 잡는 일은 당연히 사치였다. 주말 이틀은 내게 충전의 시간이어야만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겁지만, 그 시간조차 나의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소모되는 시간이기에 가급적 집에 머물렀다. 일주일 동안 밀린 청소를 하고 누워서 쉬는 것이 유일한 안식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더 친구가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또 있었다. 그동안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상당 부분은 내가 비지니스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의 진짜 친구들과 회사에 올인하는 생활을 하며 서서히 멀어진 상태였다.


처음 몇달은 친구인 줄 알았던 그들과 열심히 시간을 보냈다.

고맙게도 그들은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줬다. 우리는 가끔 골프 라운딩을 같이 했고, 끝나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늘상 했던 것처럼 각자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 속해 있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들로 회사를 그만두기 전과 마찬가지로 어울렸다. 그들이 회사를 그만 둔 나와 열심히 놀아줬던 이유는 나를 스카웃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꽤나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던 경쟁사 직원이 FA시장에 나와 버린 것이었다.


누가 그녀를 데러갈 것인가.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채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일년 쯤 지났을까 그들과의 자리가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놀꺼야? 이제 일 좀 해야지

일주일에 3일만 일할래? 너한테 맞춰줄께

이제 다시 업무복귀 해야지. 더 놀면 감 떨어져


일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내가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일에 몰두해 살았던 네가 언제까지 놀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물었다. 일을 잘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더이상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과의 자리는 어쩐지 조금씩 재미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경쟁사, 협력사들로부터 한번씩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나니, 당연히 그들과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친구들과의 사이도 어쩐지 점차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길래 몇년을 일을 안하고 놀고 있어?


착한 나의 친구들은 아무도 나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그저 나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40대 맞벌이 엄마로써, 매일을 직장에서, 가정에서, 아이들과 전쟁를 벌이고 있는 친구들에게 고요한 바다같은 나의 일상을 나누는 것은 점차 어려워졌다. 그들의 삶에 비해 내 삶은 너무 편안해 보여 미안해 만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외로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이 그랬다. 다들 비슷한 환경속에서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갔다. 단 한번도 특별한 존재인 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모두 어딘가에 소속되어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백수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외로운 일이었다.


함께 놀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집 근처에서 하는 독서 모임에도 나가보고, 와인 모임에도 나가봤다. 하지만 인연을 이어나갈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모두 그들만의 일상이 있었고, 소속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참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이방인이었을꺼다. 아무도 나에게 너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3년을 넘게 나는 방황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달았다.

혼자서 충분히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조금씩 지쳐갈 때쯤, 나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조금 더 이른 나이에 파이어를 준비하는 사람들, 또는 그것을 이미 이룬 사람들. 우리는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과 할 수 없는 은퇴 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내게 찾아 왔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십년, 이십년, 그보다 더 오래 만난 나의 오랜 친구들, 지인들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 지 모르겠다. 얇지만 긴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달라졌다. 먼저 만남을 제안하기에 이르렀으니,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다니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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