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보자기를 쓴 소녀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고민을 안고 산다. 각자의 고민의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에게 자신의 고민은 커다란 산 같다.
저마다 작고, 커다란 산에 짓눌려 누군가의 조언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어떠한 대답이라도 해줘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나의 대답은 늘 이 질문으로 시작된다.
‘당장, 다음 달에 또는 육 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
나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질문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이라고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해서는 결코 좋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어떤 이에게는 절대 극단적인 비약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물론 누구에게라도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상황일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 주인공이 자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어려운 상황의 고민이라도, 사실 이 질문 하나면 누구나 자신이 진짜 원하는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조언 아닌 조언은 대부분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말 뿐이다.
어쩔 땐 한 달을 살고, 어쩔 땐 오 개월쯤을 산다.
정기검진 결과가 나오는 외래날부터, 다음 검진의 결과가 나오는 외래날까지가 내게 주어진 귀여운 미래다.
누구나 평균수명까지 살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살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주어진 미래는 고작 몇 달이다. 스스로에게 남은 시간이 무한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과, 어쩌면 야속하게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시간을 써야 하는 사람의 인생은 조금 다르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지,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내가 해야 할 단 하나의 고민은 다음 정기검진 때까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즐겁게, 그리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2년 전쯤 유방외과 검진에서 안 보이던 무엇인가가 보인다는 교수님의 소견이 있었다.
2년 정도 지나면 재발률이 현저하게 낮아진다고 했고, 이제 환자로서의 삶보다는 일반인의 삶에 꽤나 익숙해지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혹시 재발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조직검사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날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었다. 다행스럽게 조직검사 결과는 별것 아닌 것 (아마도 지방이 뭉친 것으로 보임 )이었지만, 그때 알았다. 모든 치료가 끝났고,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환자라는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언제라도 예상보다 빨리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지 기준이 명확해지다 보니 삶은 심플해졌고 쓸데없는 고민들은 내 인생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졌다. 부모님이 나이 드는 시간의 속도보다 어쩌면 내가 죽는 시간의 속도가 빠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라냈다. 어쩌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시간을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까 말까 싶을 때면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하게 될까? 하고 물었다. 모든 것은 몹시 심플해졌다.
나의 건강에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반려암 2개와 함께여도 나는 꽤나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가끔 나의 신경을 거슬리는 연락을 받을 때가 그렇다.
‘별일 없니? 네가 아픈 것이 자꾸 보이는데, 정말 별일 없는 것이야?
네가 검정 보자기를 쓰고 있는 것이 보여. 그건 죽은 사람들이 보일 때나 그런데 왜 자꾸 네가 그런 모습인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
아빠의 사촌동생이자 무속인인 고모는 가끔 다시 생각해 내기조차 싫은 말을 전하려는지 연락을 해 온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다던 엄마의 고집에, 고모는 내가 아프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늘 내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래도 섬찟한데, 그녀의 눈에 보이는 아픈 소녀가 나라고 하니 말문이 막히곤 했다. 멀쩡하게 잘 지내는 딸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연락을 끊자고 하던 엄마의 호통에 고모는 더 이상 그녀가 보는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마음 한편에 박제되어 버린 그녀의 이야기에, 혹시라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잊고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이렇게 행복할리가 없는데…..
일 년에 몇 번씩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에 휩싸일 때가 있다. 여지없이 건강검진 기간이 다가온다는 증거다.
벌써 4년, 이제 1년만 버티면 완치야!
5년 완치판정을 받기까지 이제 고작 일 년이 남았는데, 내 오른쪽 가슴에 또 무엇인가가 보인다고 했다.
어쩐지 너무 행복한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