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괴롭힘에 대한 소회
8년 차 직장인 A입니다.
옆옆 동네 사시는 팀장님을 모시기 위해 세 달째 40분씩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풀하면 가끔 기름이라도 채워주실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오늘은 정을 전해주신다며 초코파이 4개를 들고 오셨는데 그중 3개를 본인이 드시고 제 자리에는 초코가루만 남겨 두셨더군요. 결혼을 앞두고 몸을 만들고 있어 점심은 따로 먹겠다고 했더니 유난 좀 그만 떨라고 구박하시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제육비빔밥을 양푼채 먹고 왔습니다. 내일 임원 보고가 있어 준비할 게 많은데 하필 팀장님 아내분이 친정에 가시는 바람에 치킨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는 주말 농장에도 함께 가자고 하시는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됩니다. 솔직한 조언 부탁 드립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위와 같은 사연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나에게도 매주 술자리를 벌이던 부장님이 계셨다. 잦은 음주로 빨개진 코가 인상적이었던 그는 늘 업무와 관계없는 회식 자리를 만들어 직원들의 소리없는 원망을 사곤 했다. 촌철살인의 대가였던 당시 사수는 처량함과 한심함이 뒤섞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속삭이곤 했다.
"외로워서 그래,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
아직 젊었던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 믿었고, 덕분에 부장님에 대한 짜증과 미움을 조금은 삭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이어오면서 나는 그 말이 완전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그리고 제 힘으로 돈을 벌게 되면 조금 더 외로워진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 비틀거리며 통닭을 사오시는 옛날 아버지들처럼,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외로움이 조금씩 쌓여간다.
아마 선배의 말처럼 부장님은 외로웠을 것이다. 허구헌 날 상사에게 깨지고,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줄어들고, 가족들과는 점점 멀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을 벗 삼아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장님의 외로움이 진실일지언정 놀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부장님에게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고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걸던 친구도 있었다. 단지 부장님의 외로움을 가장 손쉽게, 게다가 공짜로 덜어줄 수 있는 존재가 직원들이었을 뿐이다.
직장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는 곳이 아니고, 직원들은 우리의 벗이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집보다 더한 애착으로 직장을 가깝게 느낄 때도 있고, 직원들과 일적인 관계를 넘어 사적으로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업무를 위한 곳이다. 직장을 친숙하게 여기고 직원들과 유대를 높이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개인적 감정과 생활까지 직장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앞선 이야기 속에서 고 상무와 전 대리는 자신의 감정을 핑계로, 죄 없는 직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자신의 감정과 생활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전가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직장과 직원들에게 수많은 피해를 끼칠 것이다. 그리고 직장을 떠나는 순간이 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생충처럼 빌붙을 곳을 찾아 헤매일 것이다.
다른 유형과 마찬가지로 사적 괴롭힘도 본질을 망각하고 선을 넘는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사적 괴롭힘의 파급력과 파괴력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직장 밖에서도 괴롭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장은 모든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재원을 제공하고 우리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소중한 곳이지만, 그것이 곧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에 매진하여 공동체를 일으켜 세웠던 전 세대의 헌신과 일과 삶의 균형을 포기하지 않는 요즘 세대의 선택이 조화를 이루어, 사적 괴롭힘이 없는 건강한 직장 문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