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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주 Apr 27. 2024

언제나 시작은 계획과 함께

모든 일에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계획 없이 훌쩍 떠난 여행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위안을 준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내집 마련을 꿈꿨던 가족이 부동산 사기로 평생 모아  돈을 일순간에 날리기도 한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안정성을 믿고 입사한 대기업이 1년 만에 구조 조정을 단행하기도 하고, 스타트업이라 고생을 각오하고 들어 간 회사가 대박을 터뜨려 상장 기업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획형 인간인 나조차도 계획은 세워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직장 생활에서 제대로 버티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계획이란 <향후 20년 안에 대기업 임원 되기>와 같은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희망사항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중한 존재지만 한치 앞도 보기 힘든 직장 생활을 헤쳐 나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 막연하고 모호한 경향이 있다.


직장 생활에 필요한 '계획'은 그 구체성과 명확성으로 말미암아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지원군이자 올바른 선택을 도와주는 길잡이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대답으로 다섯 가지 질문을 들고 싶다.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언제까지 일할 것인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직장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직장에 대해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병법처럼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하는 나'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직장 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위 질문들은 내가 일하는 목적과 방식을 알려주고 직장에서 버텨야 할 때와 그만 두어야 할 때를 판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 이 질문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현실적인 시선으로, 최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기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언제까지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노후 대비가 될 때까지',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와 같은 모호하고 달성하기 어려운 답변은 피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에서 발표한 <2023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장년 구직자들이 퇴직한 실제 연령은 평균 50.5세로 중장년층이 희망하는 퇴직 연령인 68.9세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퇴직 사유를 살펴보면 정년 퇴직 비율은 고작 9.7%에 그치고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의 비자발적 퇴직 비율이 5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통계만 보더라도 우리의 기대치와 현실 세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그것도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퇴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에겐 자신을 지켜주고 기대와 현실 간의 단차를 줄여 줄 실질적이고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직장 생활에 뛰어 들었다. '일하는 나'에 대한 탐색은커녕 적당한 네임 밸류와 근로 조건만 갖추면 어떤 직장이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아찔할 정도로 무지하고 무모했지만 그런 것치고 나의 직장 생활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실제 직장 생활은 만취한 술꾼마냥 정신없이 비틀거렸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후 갑자기 업무 배제가 되기도 하고, 의욕이 떨어져 이직을 알아보고 있던 중 승진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굳게 믿는 고지식한 나는 4월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직장 생활의 행태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적지 않게 축났다.


그렇게 십여 년을 무식하게 견디고 건강과 개인생활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서야 나는, 직장 생활에서 나를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갑작스러운 이직 제의나 직장의 예상치 못한 부당한 대우에 바로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미리 세워 둔 계획을 토대로 점검하고 득과 실을 따져 나에게 가장 유리한, 그리고 가장 나다운 결정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나의 계획에는 허점이 많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입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두가 좋다고 하는 직장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계획이 언제나 효과적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진실된 조언을 건네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현명하게 나를 지키며 일하기 위해 우리들의 가슴 속에 사직서 대신 자신만의 계획서를 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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