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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연고   

by 난주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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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린다. 자그마한 손이 목덜미를 감싸고 품 안에 몸을 던진다. 보송하고 달큼한 냄새가 콧 속을 가득 채우고 따스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엄마씨, 사랑해. 보고 싶었어."

"엄마도 너무나 보고 싶었어."


매일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할 때마다, 하교하는 아이를 맞이할 때마다 괜히 목이 멘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것 같다고 할 만큼 우리는 뜨거운 포옹과 사랑 고백을 나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고 있고 나는 언제 다시 출근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감사하다.



요즘 나는 시련을 통해 생긴 깊은 상흔에 감사 연고를 바르고 있다.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감사할 일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직은 초창기라 상흔이 완벽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열심히 바르다 보면 언제가는 옅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상흔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해도,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아무리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고된 인생 속에 숱한 시련을 맞이하다 보면 상흔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련이라는 파도를 피해 눈처럼 희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흔을 방치해선 안 된다. 깊은 상처가 덧나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듯, 방치된 상흔은 우리 삶을 지옥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시련을 겪은 우리 모두는 것이다. 상황을 부정하고 타인을 미워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나아가 자신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일이 우리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상흔을 치료해야 한다. 어린 시절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어머니가 후시딘을 발라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상흔에 감사 연고를 발라 주어야 한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심각한 질병을 이겨내고, 무분별한 폭력에 희생되고 다시 삶을 살아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겨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마디 점프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밝은 미래로 떠나기에 앞서 삶에 대한 의지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기억을 모두 삭제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완전한 망각이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시련을 이겨내는 동시에 그로 인한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에 가장 효과적인 연고는 바로 '감사'라고 생각한다. 힘든 시련을 거쳤음에도 우리의 삶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선사한 감사의 순간들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나는 덕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제법 긍정적인 편이고 매사 바르게 행동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맞지만 성격이 급하고 용납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더없이 부족한 내가 시련을 감당하고 회복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역량을 발휘하곤 한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숱한 시련의 경험을 내재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사를 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련의 한복판에서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을 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련이 지나가고 찾아온 일상의 순간에서 감사 연고를 꺼내 바르는 것은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다. 삶의 모든 일이 그렇듯 감사하는 일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할 것이나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먹는 일마냥 저절로 되는 순간이 것이다.


오늘 주변을 돌아보라. 따스한 봄기운에, 튼튼한 두 다리에, 곁에 있는 사람에 감사를 전해보라. 조금 더 익숙해진 후에는 시련을 무사히 이겨낸, 힘겹지만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감사를 표해보라. 어느 순간 감사가 가진 따뜻함 속에 시련의 상흔이 조금은 옅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언제나 부족한 나를 조건 없이 인정하고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지인들에게. 그리고 보잘것없는 글을 읽어주고 댓글까지 달아주는 소중한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당신들이 있어 참 감사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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