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나 숨통이 막히는 순간은 있다. 억울하고 화나고 힘들고 슬퍼서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봐도 군침이 돌지 않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이룰 수 없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이 오래되면 병이 된다. 스트레스는 서서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심연의 깊은 곳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일단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심연의 바다로 향하기 전 '발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를 향해 몰아치는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떨쳐내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술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화를 내고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고, 물건을 던지고 부숴 버리는 것과 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발산이 아닌 민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당시에는 쾌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나 뒷맛은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롯이 혼자가 되어 내 안의 감정을 발산할 기회가 필요하다. 한 시간 동안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열창하는 것,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땀이 날 때까지 달리는 것과 같이 역동적인 행위. 아니면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 거울 속 자신을 마주 보며 속 깊은 곳에 있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과 같이 내밀한 행위 모두 좋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반드시 홀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는 것도 상당 부분 감정을 해소할 수 있으나 발산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의식하기에 나의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꺼내놓고 직면하려면 우리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한다.
휴직한 지 이제 두어 달.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과 업무를 보고 한 달에도 수 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했던 나는 일상의 상당 부분을 혼자 보내야 하는 것이 몹시 낯설었다. 휴직에 들어오고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회사 때문에 가뜩이나 속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혼자 있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힘겨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했다. 헤드폰을 쓰고 처진 기분을 끌어올려 줄 신나는 음악을 들으니 정말 오랜만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스텝을 밟고 두 팔을 흔들고 고개를 저으며 거의 20년 만에 신나게 춤을 췄다.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덜미에 땀이 날 때까지 나만의 춤을 췄다. 그날 췄던 것을 춤이라고 불러야 할지 몸짓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거리낌 없이 감정을 발산한 만큼은 사실이다.
한참을 그러고 나니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나 우스웠다. 평소 망가지는 것이 싫어 술도 안 마시는 내가 한밤중에 막춤이라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이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분출한 데서 오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삶은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조금 살만하다 싶으면 힘든 일이 다가오고 겨우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힘든 일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힘듦을 알아봐 주고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만일 감정을 발산하는 일 없이 계속 쌓아두기만 한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나에게도 머지않아 좋은 날이 올 것임을 숱한 경험으로 안다. 그러나 동시에 1년 넘게 곯고 곯은 내 속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휴직 기간을 귀양의 시간이 아닌 발산의 시간으로 채워볼 생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의 민망한 막춤만큼이나 시원한 해방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