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관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에디터 P의 첫 번째 잡생각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고 하며 운동하던 물체는 등속 직선운동을 계속하려고 한다.
대학교를 수료한 뒤로 말하는 감자 lev.4 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강제로 들어야 하는 수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사라지고, 레포트를 쓰기 위해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없어져서 그런가 싶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자료를 검색하고, 뉴스를 찾아보는 일도 줄었다. 그 시간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고 과자를 먹지,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를 머리에 넣어서 뭐하냐는 마음이었다. 쉬는 날엔 그저 뇌를 텅 비워두고 싶었다. 물론 가끔은 그런 날이 필요하다만, 매일을 쉬는 날로 살고 있어 문제였다. 나는 뉴스레터를 만드는 사람이고, 아이템을 기획하는 사람인데 타의적, 자의적 인풋이 줄다 보니 이전에 갖고 있던 것만큼의 생각밖에 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 내에서 새로운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 나는 그 관성을 꽤 오랫동안 깨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쁜 관성임을 인지했기에 이미 깨진 거나 다름없다. 당장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쌓아둔 메일을 열고 지적 허영심을 위해 사둔 책을 읽어볼 예정이다.
아래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관성에 대한 이야기.
어떤 물체가 관성의 법칙에 의해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이유는 마찰력과 추진력의 합이 0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마찰력이 더 커지면 물체는 서서히 멈추는 거고, 추진력이 더 커지면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같은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는 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만, 일할 때는 차라리 관성의 법칙을 철저히 따라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생활에서는 우중충한 날씨, 지하철에서 만난 빌런, 초심을 잃은 나 등의 시시콜콜한 마찰력으로 인해 결국 그 자리에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약간의 마찰력이 느껴지는 순간에 나는 추진력을 더 얻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그래야 현상 유지라도 하니까. 호기롭게 도전한 일이 일상이 되는 시점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여기서 긴장을 풀고 적당히 만족한 뒤에 잠깐 쉬어간다면, 그대로 도태되는 지름길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괜히 초심을 잃지 말고, 용두사미가 되지 말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다. 작은 마찰력이 쌓여 멈추고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리고 다른 말이지만, 무너지는 것도 습관이다. 이건 자존감과도 연관있다.)
오히려 도전이 더 쉽다. 끊임없이 방해하는 마찰력을 이겨야 하는 때를 인지하고 잘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