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디터 P의 사담)
안녕하세요. 난나나 뉴스레터 에디터 PEPPER 입니다. 레터 1주년을 기념해 그동안의 생각을 일기 형태로 공유해볼까 합니다. 운영하면서 든 생각보다 운영하기 전의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첫 시작을 기록하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기존 레터 어투와는 다르게 에디터의 본캐가 잔뜩 묻은 글이니 참고해 주세요! 에디터 J의 사담은 다음 편에 공개됩니다.
글이 꽤 길어져 '에디터 P의 사담'은 1탄-2탄으로 나누어 올라갑니다. 1탄에서는 레터를 운영하기 전 심경/상황 변화를, 2탄에서는 레터를 운영하며 겪은 일들을 담을 예정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레터 운영 D-100)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무언가에 깊게 빠져본 적이, 좋아하는 것에 미친 듯이 몰입해 그것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진지한 글. 레터 운영 100일 전, 나는 이런 상태였다. 지금 하는 /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해 '왜'가 명확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이끌어낸 행동은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추구하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을 믿었다.
그러나 '왜'를, 내 안의 목소리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어서 이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걸까. 하루 종일 앉아서 생각한다고 나올 답은 아니었지만, 계속 나와 씨름했다. 그러다 발견한 내 약점 '꾸준함', '애정'.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무언가에 깊게 빠져본 적이, 좋아하는 것에 미친 듯이 몰입해 그것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도 적당히, 술도 적당히, 노는 것도 적당히, 글도 적당히. 취향이랄 것도 딱히 없고, 나만의 영역도 없으니 모호한 자아를 갖고 0에서 시작한 고민이었던 것. 갑자기 특별한 동기를 찾으려니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이면 내 영역에서 멋진 일을 척-척- 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웬걸 현실은 침대에 누워서 사색하다 눈물즙 짜는 안타까운, 마음만 바쁜 2N살이었다.
(레터 운영 D-70)
꾸준히 정보를 찾고 글을 올리는 것이 재밌었다. 가끔 오는 피드백도 좋았다. 누군가 내가 정리한 글이 정말 필요한 내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도 즐거웠다.
그래서 꾸준하게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뉴스를 보는 것을 즐기진 않았지만, 흥미로운 소식을 보면 공유하는 것을 즐겼던 거 같다. 그래서 친구들만 보는 개인 블로그에 '일간 스크랩'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그날 본 재밌는 소식들을 모았다.
그렇게 글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 블로그에 올리는 거 진짜 재밌어. 나 뉴스 안 보고 네 블로그 본다니까?" 포털에서 뭘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가 안 떠서 아예 안 보는 걸 선택했다는 친구의 말이다. 물론 과대평가된 작은 칭찬이었지만, 나에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말이었다.
그 후로 블로그에 짧은 이슈를 모아 올리는 것을 두 달 더 했다. 처음보다 키워드 유입량도 늘어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재밌었다. 꾸준히 정보를 찾고 글을 올리는 것이 두근거리고 재밌었다. 가끔 오는 피드백도 좋았다. 누군가 내가 정리한 글이 정말 필요한 내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도 즐거웠다. 점점 흥미와 확신이 생겼다.
(레터 운영 D-40)
일기를 외부에 공개하기는 싫은데 꾸준히 내 생각은 공유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영감도 되고 싶고, 꾸준함이 무기라는 것을 증명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욕망이 생겼다.
2020년의 반이 지나갈 무렵, 블로그에 일간 스크랩은 꾸준히 하고 있었으나 정작 내 일기 쓰는 것은 멈췄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하루를 빼먹었는데 그게 그대로 잊혔다. 반년을 넘게 써왔는데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위 글은 그렇게 일주일을 잊고 살다가 내가 근래 펜을 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은은한 죄책감을 느끼던 중에 쓴 글이다. 어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컨디션은 어땠는지, 옷은 뭘 입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뇌에 어떤 부분이 손상을 입은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전날 먹은 음식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흔적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생각하기를 포기한다면,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간다면, 여전히 그저 그런 인생을 살 것이고 그런 나에게 화살을 쏘며 자책할 게 뻔했다.
일기를 외부에 공개하기는 싫은데 꾸준히 내 생각은 공유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영감도 되고 싶고, 꾸준함이 무기라는 것을 증명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욕망이 생겼다. 요약하자면, 생각하고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삶이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레터를 운영할 운명의 에디터 J를 만났다.
(레터 운영 D-10)
각자 아이디어 떠오르는 게 있으면 갑자기 카톡방에 나타나서 '아이디어'라고 쓴 후 주절주절 얘기를 하다가 사라진다.
"우리가 이걸 진짜로 할 수 있을까?"
각 잡고 시작한 회의는 아니었다. 일단 만들긴 만드는데 멋진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도통 제멋대로인 INFP(에디터 P)와 ENFP(에디터 J)라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던지는 우당탕탕 회의였다.
+) 이 포맷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게 잘 맞는 방식이기도 하고. 각자 아이디어 떠오르는 게 있으면 갑자기 카톡방에 나타나서 '아이디어'라고 쓴 후 주절주절 얘기를 하다가 사라진다. 그러다 상대가 '엇 이거 좋은데?' 하면 아이디어를 던진 상대는 이미 감감무소식.
정말 '던지고 나간'다. 그런 식으로 주고받은 생각은 우리의 아이디어 창고에 쌓아뒀다가 언젠가 꺼내 콘텐츠로 만든다. 그렇게 여러 프로젝트(후원/스페셜레터/펀딩 등)가 완성됐다.
다시 돌아가서 2020년 8월 22일은 난나나 레터의 첫 회의 날이었다. 시작한 김에 다음 주에 첫 레터를 발송해보는 것이 어떻냐 제안했다. 제대로 시작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단 엉성한 초안이라도 만들어보잔 생각이었다. 어떤 분야의 레터를 만들까 고민하다 지금 나의 지식으론 한 분야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생각과 우리가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하에 적당히 무겁고 + 적당히 가벼운 + 독자에게 유용한 + 제작자가 즐거운 레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구독자가 한 자릿수였던 진짜진짜처음.url 레터가 탄생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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