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병원> -
글이 안 써진다. 벌써 2주일 째다.
올 하반기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편씩 글을 발행해 왔으므로
짧은 시간이 아니다.
문제는 쓰기 싫었다거나,
쓸 시간이 없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쓰고 싶은데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 편씩 올라오는 이웃 작가님들의 쏟아지는 글을 보며 꿈결 같은 이인감을 느꼈다.
글을 읽는 것은 좋았지만 쓰는 것보다 좋진 않았다.
어디에 걸렸을까.
머리에 걸렸을까 가슴에 걸렸을까.
어딘가에 꽉 막혀 내려가질 않는다.
막막한 검은 바다에서부유하는 단어들을 건져보려 애쓰는데 서툰 헛손질에 성과는 신통치가 않다.
걸려 내려가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이 그 어떤 맥락을 지니지 못하고 내 몸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기분은 참담하다. 반짝이는 글감들이 수백 개의 불을 한 번에 켰다가 한 번에 꺼지는 기분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느끼고 있다.
글은 그저 쓰는 것 이라는데* 변함없이,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어쨌든지 무조건, 쓰는 거라는데 숨을 쉬고 내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저'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막혀 걸릴 수 있는 것일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방법을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답답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일까?
쓰고 싶은 글을 찾지 못해 질문을 뒤집어 보았다.
내가 쓰고 싶지 않은 글은 어떤 글인가.
다만, 욕심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다.
'나'라는 시야에 갇힌 일기 같은 글은 쓰기 싫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의 일 분 일 초는 귀하니까.
브런치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신변잡기의 위대함과 나르시시즘의 잡스러움은 다르다고,
그 균형을 잡고 싶었다.
이미 결론을 내린 생각을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글은 쓰기 싫다.
세상에 좋은 말은 이미 너무 차고 넘치니까.
사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무엇도 내겐 아직 없으니까.
숨기고 숨기려 해도 글 속에서 번져 나오는 내적 향기와 깊이의 강요는 다르다고,
그 차이를 짚어내고 싶었다.
글을 쓸 수 없었던 지난 보름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었다.
글을 쓸 수 없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는 그 사실, 그 하나를 얻고 나는 이 글을 쓴다.
* 글은 그저 쓰는 것이라는 조언은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좋은 영감을 주시는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 '스테르담'님의 글(그냥 쓰라는 거짓말, 2021.11.30.)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 글을 발행하지 못하는 초조함을 갖고 있을 때 자주 들러 옛글을 하나하나 읽어주신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 '흐르는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덕분에 뭐라도 끄적여야겠다는 그래서 글을 못 쓰겠다는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귀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은 미술의 일상화를 알기 쉽게 풀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