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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Feb 02. 2022

미운 우리 내향성

내향성과 외향성은 물과 기름이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느린 호흡과 낡아진 몸을 닮은 완행열차를 타고 창문에 이마를 서너 번씩 부딪히는 시골길 버스 안에서 오빠 동생과 킬킬거리다 보면 도착하는 외가 가는 길은 너무 재미있었다. 더욱 좋았던 것은 제법 멋스러운 고독의 시간들이 어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 언니와 신나게 노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 바라보았던 외양간 누렁소의 슬픈 코뚜레와 눈망울이 더 기억에 남았다. 낯익은 우리 집 벽지와 다른 할머니 방의 벽지를 보며 그 기하학적 도형들의 선을 따라가 보다 잠드는 일이 더 흥미로웠다. 언제나 그렇게 집이 아닌 곳을 가면 사람보다는 풍경이, 사물이, 날씨가 더 나를 둘러쌌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물며 두서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일이 좋았다. 나는 깊은 숲속에서 작은 창 하나를 달고 고개를 내밀어 세상구경을 하는 사람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머무르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 있는 건 더 좋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애가 참 어른스럽네."


엄마는 7남매 중 둘째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형제가 많았다. 그래서 외가에 갈 때마다 복잡한 호칭에 사람 수까지 많던 외가 사람들을 기억해 내는 것은 나에게 큰 숙젯거리였다.


추석 때면 엄마가 '이분은 큰 외할아버지, 저분은 둘째 외숙모, 저기 저분은...' 이렇게 꼬박꼬박 알려줘도 다음 해 추석이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어른들의 얼굴은 어떤 면에서 다 비슷했고 어떤 면에서 또 다 변해 있어 나를 고난에 빠뜨렸다.


그렇게 친척들이 잔뜩 모인 외가에 가면 엄마는 부엌에서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그리워 부엌 앞을 서성였지만 막상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지는 못했다. 그것조차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온갖 감각들은 부엌을 향해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부엌문 앞에서 인형놀이를 했고 그런 나에게 어른들은 '애가 참 으(어)른스럽네.'라고 한 마디씩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어른스러움을 가장하여 수줍음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그에 비해 사촌 언니는 어른들이 '너는 나중에 꼭 미스 코리아 나가라.'라고 할 정도로 큰 키에 예쁜 얼굴과 도도함을 갖고 있었다. 어디에 가도 눈길을 끌고 주목받는 외모와 활발한 성격이었다.


어려서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칭찬을 한 몸에 받는 것을 일관되게 보고 듣고 자라는 것은 은연중에 나 자신의 성격 유형에 대한 자괴감을 불러오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언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수줍음이란 나쁜 것이고, 활발함이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건 내성적인 나를 더욱 위축시켰다.


그저 나는
조금 더 머뭇거리고,
조금 더 소리 없이 웃었을 뿐인데.
"아이가 참 당차요."


사회라는 세상 속에 더 가까이 다가가자 혼란스러운 일이 생겨났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인데 자꾸만 또 다른 '나'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6학년 때 친구 하나와 팀을 구성하여 '민들레의 생태' 뭐 그 비스무리한 주제로 과학전람회에 나가게 된 일이 있었다. 발표 날이 되자 나는 너무 떨려 어쩔 줄을 몰랐다. 평소 씩씩하고 과감하며 발표력이 좋은 친구만 믿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

뿔테 안경을 지그시 올리며 심사위원은 내게 민들레꽃의 꽃대가 꽃일 때는 바닥에 붙어 자라다가 홀씨가 되었을 때는 꼿꼿이 일어서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당황한 친구는 자신감 드높은 엉뚱한 대답을 했고 옆에 있던 담임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아니야, 그건 아니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꽃일 때는 사람들이 꺾어 갈까 봐 숨어 있다가 씨앗이 되었을 때는 날아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라고 대답했고 그 어른은 알 수 없는 함박웃음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요쿠르트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전람회가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제가 지켜보니 아이가 참 당차요.'라고 말했다. 난생처음 듣는 말에 이제껏 믿어왔던 나의 내향성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이 흔들렸다.


살기 편한 쪽은 아무래도 외향성이라서...?


다들 공감할 것 같다. 수업 중에 가만히 있는 학생보다는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는 학생이 주목받는다. 팀이라는 조직 문화 속에서 오래 숙고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TV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은 가만히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대인 기술이 뛰어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요즘 대접받는 EQ의 강자들, 공동체 역량의 개념 정의에는 슬픔과 좌절이라고는 남의 이야기인 만화 속 명랑 캐릭터가 연상된다. 외향성, 적극성, 과감성에 대한 사람들의 성공신화 그리고 로망은 또 얼마나 거대한가.

세상을 살아가기 편한 쪽은 외향성 같아서 성장해 나갈수록 나는 나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보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외향과 내향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하기 힘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사자 같은 용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과 느낌이라는 내면세계에 끌리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 세계에 끌린다. - 칼 융(1875-1961) -


''에 대한 사춘기적 탐구는 사실상 끝난 지 이미 오래된 지금, 융의 설명에 의하면 나는 매우 강력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굳이 융의 설명이 없어도 그러하다. 그런데 왜 나는 수십 년 간 나 자신에 대한 성향을 판단 내리기가 어려웠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다. 성격이란 것이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한 사람들의 강요된 인식 때문이 컸다.


외향성은 나서는 것, 내향성은 숨는 것

외향성은 대범한 것, 내향성은 소심한 것

외향성은 사교적인 것, 내향성은 수줍은 것


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외향성은 좋은 것, 내향성은 좋지 않은 것


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


대상을 이분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일견 쉽고 간편하고 그 대상에 대한 빠른 이해를 돕지만 좀 더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설명 거리를 필요로 한다. 일단 사람의 성향을 외향과 내향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만 분류한다는 것부터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아니 외향과 내향을 저런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것은 더욱 더 많은 해명이 필요하다. 나에게 적용해 보더라도 나는 앞에 잘 나서지 않지만 결코 숨지도 않는다. 오히려 긴급한 사태에서는 누구보다도 곁눈질하지 않고 직진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견과 이분법 사고는 생각보다 굳건해서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Quiet)(2012)> 에서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외향성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지적한다. 생각해 보라, 그는 수줍음이 많은 미국 청년이었다, 라는 문장을 곱씹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을.

그러나 가장 외향적인 국가라는 미국인들도 1/3 내지 1/2 가량의 사람이 내향적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는 더욱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 생각보다 외향인은 적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외향성에 대한 지독한 선망 의식을 갖고 있는 걸까? 나조차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을 뒤로  '애가 좀 수줍음을 타서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먼저 하게 되는 걸까?


내향과 외향을 좀 더 세분화한 성격 유형,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Quiet)(2012)> 중에서



사람들은 그녀가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사자 같은 용기가 있었다'

고 말했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 조용히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은 로자 파크스(1913-2005)를 수식하는 말들은 '급진적인 겸손함', '조용한 의연함'이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역사의 평가 그대로 소심함과 수줍음과 사자 같은 용기(p.18)는 한 사람에게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로자 파크스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닌 내향성은 외향성과 물과 기름 같은 상태가 아니었음을. 내게는 소심함과 수줍음이라는 내향성이 용기와 어른스러움이라는 외향적 가치와 길항적으로 공존했다. 단지 세상이 그것들 중 무엇이 너냐고 물으며 하나로 정해 대답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친척 집에 가면 몸을 배배 꼬았지만 2학년 때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친구들 앞에서 야무지게 자기소개를 했다. 전학 오는 친구들과 선뜻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지만 매 학급 회의 때마다 불러야만 하는 교가의 가사를 꾹꾹 내려 적은 쪽지를 전해 주었다. 나는 내향적이었지만 외향성도 내 안에 모두 존재했던 나의 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조금 바꾸기로 다.


나는 어른스러움을 가장하여 수줍음을 애써 감추고 있었던 게 아니라 수줍었지만 용기로 그 수줍음을 맞게 조절하고자 했다. 수줍음과 용기, 다시 소심함과 대범함이 모두 나라는 사람을 관통하고 있다.


그중 어느 하나만의 내가 아니다.


깊은 숲속이지만 세상을 향한 작은 창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나는 고개를 내밀어 세상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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