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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Feb 18. 2022

성적 침범이 지닌 네 개의 칼날 2

두 번째 이야기

세상의 선악은 분명해도 그것에 대한 사람들은 생각은 다 달랐다. 이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안온한 시기에는 그들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흐릿한 안개처럼 타인은커녕 그 자신에게조차 실체를 보여 주지 않다가 실제 일어난 사건 앞에서 구체적인 망령을 드러냈다.


세 번째 칼날_ 사람들은 다 다른 생각을 한다


아마도 이 사건은 잠잠한 학교를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것이다’라고 쓰는 이유는 당시에 이 사건 자체에 집중하느라 주변 분위기를 파악할 여력이 없었고,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위기 파악을 할 것도 없이 나쁜 놈은 정해져 있는 거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안타까워 하고 분노했다. 아직 미혼인 K를 어쩌냐며, 이곳에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니 도와줄 사람도 없지 않냐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우리(나, K와 동갑인 음악 선생, 4살 위의 선배 교사인 국어 선생, 이렇게 넷은 평소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더러 가족처럼 도와주라고 했다. 어떤 남 교사는 주먹을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남 교사는 우리 앞에서 그녀의 상처에 공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공감과 눈물 속에서 우리는 범죄자를 단죄하고 K의 상처를 치유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마치 높은 언덕에서 물을 흘려 내려보내면 주르륵 길을 따라 내려갈 줄만 알았는데, 물이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이상한 곳에 고여 썩어가거나 메말라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가령 그 과정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공론화 하기 전 먼저 S선생과 같은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 여 선생에게 대략적인 사건을 알렸다. S선생이 여성에 대한 성추행을 저질렀음은 매우 위중한 상황이므로 그와 가장 밀접한 장소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 둘(K와 그녀)을 걱정하며 그녀도 연구실에서 단 둘이 있거나 하는 때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것은 참 헛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나중에 그녀의 고백으로 안 것이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이미 S선생으로부터 그날 밤 연락을 받았었다. S선생은 그녀에게 그날 밤 자기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데 자기가 어쩌면 좋겠냐고 했다고 했다. 왜 그 깊은 밤 그녀에게 연락을 해 범죄 상담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녀가 그 사실을 숨기고 우리를 대했다는 것, 오히려 우리의 이런 움직임을 S선생에게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저는 당장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건 정말 큰 일이라고요’라고 말했다고 자신의 입장을 뒤늦게 항변했지만 우리는 그 어떤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 됨을 찬물에 머리를 담구듯 깨달아야만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해 왔다.


세상에 선과 악은 각각 분명하다고.


그리고 분명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도 다 같을 거라고.


피해를 입은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 같을 거라고.


다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위로의 방법을 찾을 거라고.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 여성과 가해 남성이 존재한다, 피해 여성의 피해 사실은 분명하고 가해 남성은 이를 인정하고 있다, 와 같은 명확한 흐름의 사건 속에서 사람들은 다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 시간을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세상의 악은 분명해도 그것에 대한 사람들은 생각과 대처방식 모두 다 달랐다.


이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안온한 시기에는 그들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흐릿한 안개처럼 타인은커녕 그 자신에게조차 실체를 보여 주지 않다가 실제 일어난 사건 앞에서 구체적인 망령을 드러냈다. 평소 지니던 신념과 가치관 따위는 개개의 사건 앞에서 영점 조정이 된다.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전짓불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야만 했던 망령은 다음과 같았다.     


1. ‘신고할 일 아니다’라는 망령


K와 우리는 성고충 상담실이라는 두 번째 타이틀이 있는 보건실의 보건 선생에게 갔다. 신고에 앞서 우리는 며칠을 함께 대화하며 그녀의 마음을 살폈다. 그 무엇이든 간에 그녀의 마음이 최우선이었다.      


- 너 신고하고 싶니?

- 모르겠어요.

- 신고 안 하면, 괜찮을 수 있어?

 - …….     


그녀는 울었다. 모르겠다는 말보다 신고 안 해도 괜찮겠냐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의 말이 진짜 대답 같았다. 우리(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우리를 만난 보건 교사는 신고를 만류했다. 신고할 일이 아니고 잘 해결하면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술이 잘못이지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사과를 담은 손편지를 써 오라고 했으니 그럼 되는 거 아니냐며, 대체 누가 잘못한 일인지 헷갈리는 말을 해댔다. 


- 예? 신고를 하지 말라고요?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가.

우린 갑자기 잠시 멍해졌다.

신고의 뜻을 세우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던 상황에서 선배 교사의 만류에 다시 판단력에 혼란이 찾아왔다.


우린 아무래도 위축되었다. 애초에 호전적 자세나 싸움닭 같은 투지가 넷에겐 없었다. 우린 그저 한 명의 피해자와 그를 둘러싼 세 명의 지인에 불과했다. 우리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출퇴근을 하고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얼마 후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그 편지에는 녹음된 내용과 다르게 자신의 성추행 사실에 대한 망각을 강조했다(고 했다). 나는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2. ‘그럴 사람 아니다’라는 망령


악마에게는 친구가 없다. 그러나 S선생에게는 있었다. 그에게는 직장에서 형님 아우 하며 절친하게 지낸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꾼 S선생을 본격적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하고 싶었다면 그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도록 설득하거나 대신 싸구려 무릎이라도 꿇으면서 매달려라도 볼 것이지,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적대시했다. K에 대한 악담, 예컨대 그녀가 술을 잘 마신다, 왜 여자 혼자 노래방 안에 있었느냐 와 같은 이야기들을 살살 풀어댔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3. ‘상관할 바 아니다’라는 망령


사실 사람들은 S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K의 가슴을 움켜쥐었는지, 아니 그 사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술이 웬수라서 노래방에서 일어난 일방적 스킨십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조차 K의 프라이버시와 마음의 상처를 고려해 당시의 상황을 더 이상 캐묻지 않았고, 주변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선에서의 정황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피해 사실은 널리 알려야 한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그러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 사건이 시간을 끌면서 점점 그런 일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다는 죄책감에서 하나둘 벗어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 사건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꼈다. 선생님의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이렇게 하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왜 남의 가족을 들먹이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뒤늦게야 사건을 제대로 전달하여 오해를 없애려 설명을 하려던 내 앞에서 자기가 상관한 일이 아니라며 자리를 떠 버리는 동료도 있었다. 두 사람이 잘 해결하면 될 일을 옆에서 나서는 바람에 학교가 남자 대 여자 두 편으로 갈라졌다며 따지는 동료도 있었다. 막말로 성폭행도 아니었잖아 라는 말도 귀에 들어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피해자는 있을 리도 없는 염산 테러의 환영에 시달리는데,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진실을 알아도 마음대로 판단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 망령들은 세 번째 칼날이 되어 우리를 찔러댔다. 같은 여자이면서, 딸 키우는 부모면서, 같은 동료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듣는이 없는 물음만 내면에서 맴돌았다.


몹시도 외롭고 힘들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지하 주차장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그 무리들은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십여 년 동안 나름 구설수 없는 직장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 사단의 중심에 있는 K의 측근이라는, 더 이상 발을 뺄 수도 없는 ‘그들’이 되었다는 생각은 밤잠을 못 이루게 했다. 작고 여린 것과 함께 하는 이들은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똑같이 작고 여린 처지가 된다. 학교폭력을 당한 아이의 부모가 그렇게 되고, 인종차별을 당한 아시아계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마음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쉽지가 않다.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약자를 대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꼭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다 달랐다.


그들은 원래 공정을 사랑하는 선량한 동료,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선량한 여교사,

폭력을 미워하는 선량한 부모,

정의를 추구하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직장 동료의 밥벌이가 달린 사안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고 판단력을 쉽게 잃는 듯했다. 또는 적극적 단죄를 망설였다. 손에 피 묻히기 싫다 이거지,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오히려 그들은 S선생 측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 탄원서에 서명을 했다. 하하, 서명을 하는 손은 악의 손인가 선의 손인가. 심지어 그들은 피해 당사자인 K에게도 탄원서를 들이밀었다.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무고한 여성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던 성추행범을 단죄하는 일을 망설일 줄은. 뉴스 속에 등장하는 성추행범은 손가락질 했겠지만 자신의 동료인 성추행범에게는 관대할 줄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자기와 상관 없는 일에 굳이 나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건 부담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내 최선의 짐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이유였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무렵 신안의 한 섬마을에 발령이 난 신규 여교사에게 일부러 술을 먹이고 관사에서 마을 주민들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이 일어났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그 후 결정된 형량에는 피해 당사자인 여교사의 탄원서서명이 결정적인 감량의 원인이 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여자들은 아우성을 쳤다. 아니 왜 피해자가 탄원서에 서명을 해줘?뭐가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그녀에게 닥친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비슷한 일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사건은 한참을 끌었다. 결국 우리는 보건 교사의 만류를 이기고 교육청에 이 사안을 신고하게 되었고 나는 교육청 조사관 앞에 증인의 신분으로 가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조사를 앞두고 우리를 부른 교감 선생님은 신고가 지체된 것에 대한 잘못을 물어 최고 관리자와 보건 교사의 징계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직장에서 아랫사람을 돌봐야 하는 어른인데, 어떤 위로도 어떤 공감도 없는 그 차가운 말은 협박처럼 들렸다.       




사실 나는 K가 당한 구체적인 성추행 사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S선생이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는 사실 정도만 그날 밤의 통화로 알고 있었을 뿐, 그 기나긴 시간을 투쟁하면서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그 정황을 물을 시간도 용기도 없었다.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 죄스러웠다.


그랬던 내가 조사관이 건네주는 K의 진술서를 먼저 읽고 공황을 일으킨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안경 낀 얼굴에 목소리와 톤에 과장된 여유가 넘치던 조사관은 나와 선배 언니를 불러 놓고 의례적인 말을 꺼냈다.      


- 자, 두 분은 K 선생님의 지인으로 이 사안에 대해 증언해 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오셨고요.     


그러던 조사관이 갑자기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시선을 옆에 있는 기록자에게 옮기며 참, 저번에 ○○학교 사건에서 위증하셨던 선생님이 어떻게 됐더라? 는 말을, 역시나 아주 조작된 티가 물씬 나는 여유를 뽐내며 딴소리를 하듯 지껄였다. 나는 담담했다. 나는 위증을 할 여유조차 없었고, 이 자리에 있기가 너무나 싫었으니까.


그리고 위증은커녕 우리에겐 몇 가지 결정적 무기가 더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S선생에 대한 피해 사실을 수소문했었고 몇몇 여 교사들이 제보를 해 주었다. S선생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술을 마신 S선생을 데려다 주는 후배의 차 안에서, S선생의 유죄를 더욱 뒷받침 할 수 있는 사안들이 수집됐고 우리는 어떤 면에서 고무되었었다. 만일에 대비해 우릴 지켜줄 방패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었다.


- 혹시 S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성적 침해 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내겐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사안이라는 제법 든든한 증거들이 있었다. 입술만 달싹이면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이 증거들은 S의 목줄을 쥘 수도 있을 정도로 꽤 수위가 높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애초에 그걸 증언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 증언들이 없더라도 이 사건이 정당하게 해결되길 간절히 바랐다. 사실 그 사람은 이런 일도 저질렀던 사람이라구요, 라고 이르는 아이의 처지가 되고 싶진 않았다. S여, 부디 자신의 죄를 인정해서 달게 벌을 받고 이 사건으로 마무리를 합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 그에게 말하듯 되뇌었다. 사실은 나도 탄원서에 서명을 했던 우리 학교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를 더 큰 구덩이에 아프게 몰아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리의 표정을 쓱 쳐다본 조사관은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며 K가 쓴 진술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처음으로 보는 구체적인 사안 진술서였다. 그런데 그 진술서에는 내가 몰랐던(앞서 설명했던) 성추행의 과정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었다.


(K에게) 요즘 운동은 해? (자기 몸을 만지며) 나 한번 만져 봐, 단단하잖아, (K의 팔을 문지르며) 근육이 좀 있어야겠네, 그리고……. 취했다고 보기 어려운 또렷한 말들, 계획적이고 은근하며 단계적이었던 추행의 과정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잠시 눈을 감고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그 이후의 기억은 띄엄띄엄 사라져 있다. 진술서를 읽고 상황을 다시 파악하게 된 나에게 매우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는 것만,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그 통제 불가한 눈물에 당황한 내가 오른편의 선배 교사를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무어라 고통을 호소했고, 손쓸 새도 없이 고개를 책상에 떨구고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만, 그리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연구실로 갔고, 그 모습에 놀란 옆 방의 선생님이 나를 달래주었는데 그게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황발작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조사를 맡은 담당 장학사가 나를 찾아왔다. 우연히도 내 첫 발령 학교에서 부장 교사로 모시던 선생님이셨고, 당시 교원 인사 관련 업무를 맡으셨기에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분께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이 말만 겨우 입을 떼어 꺼낼 수 있었다.     


- 어쩌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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