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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May 14. 2022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 좋아하세요?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그루 나무의 사연


직장 후배와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차 한 잔을 하자고 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일을 한다는 것은 비록 그 과정 자체는 고되더라도 그로부터 오는 개운함이 있지요.


그러던 중 후배에게 작년 말 즈음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것은 아니었고, 안 그래도 그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후배는 수시로 악의적 문제 제기를 하는 민원인에게 시달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증거들을 가지고 정식으로 고소라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다고 하더군요. 상사나 관리자는 그런 후배의 상처를 보듬거나 돕기보다는 묵과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크게 만들기보다 후배 한 사람이 참고 후배 선에서 마무리가 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옆 사무실 문 하나만 열면 물을 수 있는 안부였음에도 그러지 못했음에 선배로서 부끄러웠고, 동료로서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개입할 성격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먼저 묻고 힘겨움을 들어줄 수는 있었습니다. 다만 그저 일 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기였고, 언제나 그렇듯 다사다난한 시간들이 새해를 향해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빠 섬세하게 살피지 못한 탓이었어요.


결국 누구의 진정한 사과도, 위로와 격려도 받지 못한 후배는 숱한 상처를 깊이 안고 2022년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한 사람의 일방적인 감내가 집단에 이익이 될까요? 그는 직장이라는 숲 안에서 마치 '마을이 가까울수록 흡집이 많아' 애처롭게 숲을 지키는 한 그루 나무같아 보였습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

나무를 좋아합니다.

숲은 더 좋아합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비유는 참 쉽고도 아름답기도 합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라는 의미로 한쪽 면만 보고 전체라고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좋은 뜻이니까요. 사물의 다양한 면을 살피는 지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비유는 때로 폭력적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의 상대적으로 작고 사소한 것들이 크고 중요한 문제들에 치여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그러합니다.


사물의 큰 그림을 바라보라는 저 말이 굵고 담대한 시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해 놓치고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있다고 느껴지고,

숲이 무성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나무의 가치를 놓치고 있다고 여겨지면서

작은 부분의 합이 큰 힘을 발휘하는 전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직장이라는 한 사회 안에서 숱한 상처를 입고 고독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오늘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후배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합니다. 상사가, 관리자들이, 싱그러운 숲을 위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듬듯 후배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문제 해결에 나서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무들의 상처가 곪아 스러지면 숲은 숲이지 못합니다. 건강하고 푸른 나무들의 합이 생명력 넘치는 숲 전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숲만 보는 눈은 나무의 상처를 보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숲 안에서 아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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