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 수집가 Apr 12. 2023

가장 아픈 날, 그날을 기다려야 한단다

입 속의 검은 입, 그 사소한 고난

저녁을 먹는데 아이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미간이 찌푸려지며 온통 밥맛을 잃은 표정이다.


"엄마, 나 입술을 깨물었는데 너무 아파."

"저런, 그거 밥 먹을 때마다 정말 아픈데. 며칠이나 됐어?"

"며칠 됐어. 어제는 아니고."


무심코 깨문 입술의 고통, 그 어떤 대단한 과오의 대가도 아니건만 우리는 그 날카로운 통증을 어떻게 얼마나 감내해야 하는지 익히 잘 안다. 연고를 바르기도 쉽지 않고 내복약을 먹으려 약국을 방문해도 약사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특히 입병이 더욱 얄궂은 것은 그 통증이 곧바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깨문 입술의 상처가 주는 진짜 고통은 이삼일 후에나 찾아와 며칠 전의 부주의함을 질책한다. 3밀리도 되지 않는 고통이 짜고 매운 것을 먹을 때나 아니 물 한 잔을 마시는 일에도 30센티는 튀어 오르고 싶을 만큼 온몸을 울린다. 입병이다.


"그런데 얼마나 아파? 어느 정도나? 못 견딜 만큼 아파?"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음식 닿을 때마다 아파."

"어쩌냐, 그럼 아직 더 아파야 하는데."

"더 아프다고?"


그렇다, 아들아. 깨문 입술의 상처는 깨문 날보다, 깨물어 상처가 부풀어 오른 날보다, 상처가 부풀어 올라 살이 차오르려고 할 때 가장 아프다. 그리고 그 가장 아픈 하루가 지나면 고통은 반감된다. 가장 아픈 날을 어찌 아느냐고 묻는다면, 엄마는 그저 '글쎄, 도저히 못 참겠다고 느껴지는 가장 아픈 날이 있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고, 곧 너도 알게 될 것이다. 3밀리짜리 작은 상처에 더욱 약이 바싹 오르고 주변의 일에 둔감해지며 신경이 온통 입술의 감각에만 모여 정신이 뾰죡해지는 하루를 지나면, 고통은 꺾인다. 전날의 고통이 잘못 느낀 환영인가 싶을 정도로 꺾인다.


그래서 너의 상처는 그리고 우리의 상처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가장 아픈 날, 그날을 기다려야 해. 우리의 그날을 간절히 기다려 보자. 너에게 입술의 상처 따위가 가장 큰 아픔이길, 가장 아픈 날이길 기도해. 그리고 상처가 너무 아파 몸서리 쳐지는 날, 그날이 지나면 정말 괜찮아. 정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 좋아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