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이의어의 수난시대
국어 어휘 공부를 하다보면 한자어가 원망되는 때가 많습니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동음이의적 성질로 인해 헷갈리는 단어가 많이 생겨나기 때문인데요. 이 두 단어도 동음이의어로서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도 다르고 뜻도 다르지만 미묘하게 유사한 맥락에서 사용되면서 뜻을 헷갈릴 수 있는 단어라 선정해 보았습니다.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문제 먼저 내 볼게요.
“나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 말았으면 해.”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매도’는 어떤 뜻으로 해석이 되시나요? ‘매도’의 대표적인 뜻은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매도(罵倒): 심하게 욕하며 나무람.
[예] 부정부패 공무원으로 그를 매도하지 말자.
● 매도(賣渡): 물건을 팔아넘김.
[예] 아파트를 싼 값에 매도했다.
먼저 첫 번째의 매도(罵倒)는 ‘욕하다’는 의미의 ‘매(罵)’와 ‘넘어지다’라는 의미의 ‘도(倒)’로 이루어진 한자로 누군가를 심하게 비난하며 몰아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 그대로의 의미를 살려 표현하면 ‘심하게 욕해서 (대상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 방향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정적인 것, 즉 '비난, 비판, 낙인'과 같은 맥락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그런데 이 매도(罵倒)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는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한데요. 이것이 주로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당사자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억울한 면이 있게 평가되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친일파가 아닌데) 친일파로 매도하다’
‘(부실 공사가 아닌데) 부실 공사로 매도되다’
‘(악덕 기업이 아닌데) 악덕 기업으로 매도되다’
와 같은 쓰임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진짜 명명백백한 잘못을 한 대상에게는 ‘매도하다’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두 번째의 매도(賣渡)는 ‘팔다’라는 의미의 ‘매(賣)’와 ‘건너다’는 의미의 ‘도(渡)’로 이루어져서 말 그대로 팔아서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아무 물건이나 판다고 매도한다고 하지 않고요, 부동산이나 주식 등 주로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명의나 권리 등의 변화가 생기는 거시 경제학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자전거, 에어컨과 같은 물건은 소유권은 가능하되 명의가 따로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보니 다음 문장들은 정말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자전거를 매도하다(?)’
‘에어컨을 매도하다(?)’
그렇다면 앞에서 냈던 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나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 말았으면 해.”라는 문장에서 매도는 어떤 의미의 매도일까요?
이 장을 제대로 읽은 여러분은 여기에 쓰인 매도가 대상을 비난한다는 뜻의 매도(罵倒)임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일부 잘못된 이해를 보면 ‘나를 그런 식으로 팔아넘기지(?) 말았으면 해.’의 의미로 소통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시쳇말로 ‘나를 도맷값으로 넘기지 마.’라는 말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매도(賣渡)’의 의미를 보더라도 제대로 된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닐뿐더러 문장 구성도 이상한 표현이므로 성립 불가능한 문장 표현입니다.
이제 ‘매도하다’의 정확한 두 가지 의미를 이해했다면 미묘하게 사용 맥락에 공통점이 있는 이 두 단어를 분명하게 구분하며 사용할 수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매도(罵倒)는 대상을 비난하여 몰아세우는 것, 매도(賣渡)는 대상을 팔아넘기는 것!
'꽉잡아 문해력'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읽자마자 문해력 천재가 되는 우리말 어휘 사전 | 박혜경 - 교보문고 (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