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뻡

'말랑말랑', '옥신각신', '왈칵'

언어 일반 2. 언어에 얹어지는 것들

by 구름 수집가
인간과 그 삶을 나타내는 것이 언어이다 보니, 어떤 언어들은 문자 그 이상의 다양한 것들을 함께 끌어오는 경우가 있다.


어떤 언어에는 감각이 얹어진다.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나타내는 '말랑말랑'이라는 단어는 가뜩이나 ㅁ과 ㄹ, ㅇ의 울림소리와 유음이 입안을 장난스럽게 감도는데 이 말을 가만히 소리 내어 보면 되지도 묽지도 않게 딱 잘 뭉쳐진 밀가루 한 덩이가 손가락 마디에 소담하게 얹힐 것만 같다.


'옥신각신'이라는 단어는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다투는 모습을 나타내는 자동사인데 ㄱ의 파열음이 마찰음 ㅅ과 만나 매우 딱딱하고 드센 느낌을 주면서 지기를 싫어하고 제 말만 주장하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왈칵'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다', '뜨거운 피가 왈칵 솟아 오르다'와 같은 문장이 바로 떠오르는 이 단어는 유음 ㄹ에서 파열음 ㅋ으로 넘어가는 방향으로 조어되어 있다. 이는 놀랍게도 부드러운 것이 급작스럽게 흘려 넘치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원래의 뜻과 매우 닮아 있다. 게다가 파열음 ㅋ이 소리 나는 곳이 혀뿌리와 여린입천장이다. 이는 소리가 조어되는 성대 및 음식물이 넘어가는 식도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 '왈'에서 '칵'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약간의 침 삼킴을 유발하며 말소리에 긴장감을 준다.(꼭 한 번씩 발음해 보시길 권한다.)


이처럼 우리말의 의성어, 의태어는 언어가 대개 대상이 지닌 감각적 이미지를 구현해 내지 못한다는 제한적 속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어떤 언어에는 기억이 얹어진다.


지시 관형사 '그'는 화자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하지만 때로는 긴 세월과 많은 장면을 이 한 단어에 담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집'이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라면, '그 집'은 누군가가 인생을 살아온 시간이 담긴 장소이다. 어떤 잠을 자고, 어떤 밥을 먹고, 어떤 휴식을 취했던 기억 속의 집이다. '친구'보다 '그 친구'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 않은가.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수 백 명이 되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으면서 때때로 불러보는 '그 친구'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아닌 소수에 대한 특별함이다.

어떤 언어의 조합은 더욱 특별한 기억을 함께 불러오는데, 내게 ‘일요일 밤 8시’는 가는 주말이 아쉬워 시계를 연달아 쳐다보며 한없이 쓸쓸해지던 어린 날의 기억이 찾아오는 언어의 조합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급할 것도 없던 유년 시절 왜 일요일 밤 8시는 그토록 아이의 마음이 조급해지던 시간이었을까. 무의식 속에 감춰진 채 미처 기억나지 않는 유년 속 어떤 사연이 이 언어 조합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아 자꾸 되뇌게 되는 말들이다.


소설가 김훈은 ‘숲’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숲, 처럼 유난히 단어와 그 소리, 모양새 사이의 친연성이 높은 단어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내게는 어느 특정한 단어만의 사정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가 지닌 자체의 성질로 다가온다. 내가 언어를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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