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것을 선호하나요, 아니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나타내는 것을 선호하나요? 둘 다 ‘나타내 보이다’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명시적 태도라 하고 후자는 묵시적 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명시적(明示的): 내용이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예] 그 신문은 사건의 진상을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아 지탄을 받았다.
● 묵시적(黙示的):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
[예] 묵시적으로 동조하다.
이 단어들이 실제 텍스트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단어에 대한 이해가 글의 이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음 기사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공급자가 소수인 시장에서 누가 가격을 올리면 다른 공급자도 슬그머니 따라 올린다.
이런 행태가 관습적으로 반복되었다면, 비록 그 공급자들 간에 명시적 담합은 없을지라도
‘묵시적 담합(Tacit Collusion)’이라고 추정되어 가격 인상 카르텔의 한 형태로 본다. …
(매일경제, 2023. 7.17.)
기사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명시적’과 ‘묵시적’은 반의어로서 한 텍스트 내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라 함께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두 단어를 중심으로 위 기사를 이해해 보면, 동종 업계에서 가격의 동반 상승이 반복된다면 겉으로 분명하게 담합하지 않았더라도 은연중에는 담합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명시적, 묵시적 이들 단어의 뜻만 알고 있어도 해당 부분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암묵적’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 암묵적(暗黙的): 자기의 의사를 밖으로 나타내지 아니한 것.
[예]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하다.
이 ‘암묵적’이라는 위의 두 단어와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일단 ‘암묵적’은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묵시적’과 유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동의 관계는 아닙니다. 즉 사전상의 정의에 의하면 묵시적인 것은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 듯하면서 드러내는 것이어서 은연중에 의사를 보이는 것에 초점이 놓여 있지만, 암묵적인 것은 아예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실제 언어생활에서의 쓰임은 이와는 달라 보입니다. 조금만 검색을 해 보아도 많은 문헌과 자료들에서 이 두 단어는 거의 동일한 단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와 일상 언어적 쓰임이 괴리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피고인 쪽은 피해자에게 ‘암묵적·묵시적 동의’가 있었음을 내세운다.
(한겨레 21, 2023. 2. 26.)
이 원칙은 행정기관의 묵시적, 암묵적 언동의 정당성 또는 존속성에 대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개인의 신뢰는 보호해야 한다는 행정법상의 기본 원리를 말한다.
(한라일보, 2023. 5. 1.)
이에 관해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이에 대해 현실 언어적으로는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고 있음을 인정하되, ‘묵시적’에는 은연중에 의사를 보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더불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이 단어가 생각만큼 단순한 쓰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어요. 사전적 정의와 실제 쓰임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 암묵적, 묵시적 뜻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묵시적은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 암묵적은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쓰임에 있어서 큰 의미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예문을 찾아보면, 묵시적 합의와 암묵적 합의 모두 ‘명료한 의사표시나 절차 없이 상호가 동의했다고 은연중에 간주하는 내용’의 의미 정도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둘의 쓰임은 정확히 어떻게 구분되나요? 가정적 상황이나 예문과 함께 설명해 주신다면 더 이해가 수월할 것 같습니다. 특히 묵시적 합의와 암묵적 합의 간의 차이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두 말은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기도 하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암묵적'은 '자기의 의사를 밖으로 나타내지 아니한 것/자기의 의사를 밖으로 나타내지 아니한'을 의미하는 말로, '묵시적'은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이는'을 의미하는 말로 풀이됨을 고려하면 '묵시적'은 암묵적보다 은연중에 의사를 보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암묵적 지지'로는 표현하나 '묵시적 지지'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략)
-2022.9.7.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명시적’은 분명히 드러내는 것, ‘암시적’은 드러내지 않되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묵시적’은 사전적 정의와는 조금 다르게 일상 언어에서는 ‘암시적’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꽉잡아 문해력'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읽자마자 문해력 천재가 되는 우리말 어휘 사전 | 박혜경 - 교보문고 (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