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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Mar 28. 2021

서점(書店), 좋아하세요?

서점에 가면 느끼는 세 가지 행복감, 그리고 따라오는 괴로움 한 가지

언젠가 나는 서점, 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사람들에게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서점을 떠올리면 느끼고 생각하는 넉넉하고 많은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다들 느끼는지 궁금했고,  만약 같다면 너무나 기쁠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공간이 제법 되는 서점이 있어 언제든 마음이 갈 곳을 잃었을 때 갈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준다. 비바람 속에서 비를 긋는 기분이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서점에 가면 행복하다. 행복한 것은 그것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더더 행복해지니까, 한 번쯤 이렇게 서점에 가면 행복한 이유를 몇 가지 손꼽아 정리해 본다.


서점에 가면 나는 일단 늘비한 책들 사이에서 섬섬하고 생생한 언어의 숲에 둘러싸이게 된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에게서 뻗어 나오는 언어의 광채에 눈이 부시고 살갑게 속삭이는 각자의 서사에 귀 언저리가 따갑게 바빠진다. 혼돈의 지질학적 역사 속에서 여러 채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쌓여 있는 퇴적암층의 모습처럼 소담하고 묵직하게 얹어진 책들은 장관을 이루며 저마다의 언어로 방문객을 환영한다. 서점에 가면, 나는 그 무수한 무언의 환영사에 제일 먼저 눈과 귀가 즐겁게 압도되고 마음이 푼푼해진다.


평소에 덜 쓰고 덜 느끼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때도 서점에 갔을 때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분의 청각과 시각은 어떠한지? 일반적으로는 흘려듣기보다는 귀담아듣기강요받는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귀담아듣기를 하고 있어도 귀담아들은 것의 결과는 그닥 대단치 못하다는 것이다. 꼭 들어야 할 것들을 듣기 위해 애쓰지만 귀의 감각이 대단히 날카로이 서 있다고 하기 어려운 듯하다. 시각도 마찬가지다. 바쁜 업무 속에서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흘려보기보다는 눈여겨보기를 한다. 꼭 보아야 할 것들을 보기 위해 애쓰지만 눈의 감각은 깨어있다기보다는 어쩌면 잠들어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듣고 있고 보고 있는데, 그 감각이 생동감 있게 살아 넘친다고 보기 어렵다. 참 이상하다.

그러나 서점에 가면 상황이 역전된다. 청각과 시각을 편안하게 놓고 있어도 좀 더 많은 것들이 들리고 보인다. 

우린 대개 분명한 목적이 있는 생각을 하고 분명한 목적을 갖고 행동한다. 그러다 서점에서는 분명한 목적이 없이 듣고 보다가 없던 목적이 생겨나고 마침내 들리고 보이는 것이 생긴다. 왜일까.

서점에 가면 일단 말과 말소리를 줄이게 된다. 그것은 서점을 방문한 자의 예의범절이나 의무라기보다는 권리에 가깝다. 서점은 평소 수다스럽게 중절거리던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말하기를 강요받던 사람도, 말과 말소리를 낮추고 줄이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러면서 온몸의 감각을 눈과 귀에 몰입하고 눈과 귀는 그 공간의 풍요로운 감각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주된 감각기관으로 존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냄새는 또 말해 무엇하겠는가. 서가에 꽂혀 손길이 잘 닿지 않은 터줏대감 같은 오래된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뭉근한 무엇, 갓 입고된 에서 흘러나오는 선선한 그 무엇은 서점 덕후들의 행복감을 높여주는 최고의 '무엇'이다.


그와 동시에 서점은 타인의 귀한 서사를 손쉽게 귀동냥할 수 있는 활발한 배움의 장으로서 성찰의 뗏목 위에 올라 타 유유히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그만인 곳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참 다양하구나, 하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되는 곳이 서점이다. 성공이란, 사랑이란, 건강이란, 부와 명예란 이미 뻔한 것들 같은데 그렇게 동일한 키워드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저절로 겸허해지는 공간이 서점이다. 나의 성공론, 나의 사랑론, 나의 건강론에 그들의 이야기를 비추어 보며 결코 같지 않은 생각의 결 속에서도 여지없이 공감의 끄덕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서점이다.  


한편 이런 농밀한 행복감들은 때로 반전의 괴로움을 동반하기도 했다.

책을 내고 싶다, 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소박하지만 내겐 참 멀게만 느껴지던 소망을 불태우던 시절에는 서점에 가면 그 끝에 항상 괴로움이 밀려왔다. 특히 책날개를 뒤집어 봤을 때 새까맣게 나이 어린 후배님이 쓴 책이거나(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었단 말인가), 나와 비슷한 스펙을 혹은 그보다 못한 스펙을 지닌 듯한 사람이 저자이거나(나도 모르게 무의미한 스펙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며 내가 꼭 써보고 싶다고 다짐하던 주제로 출간된 책을 보거나(그래서 게으름은 중대한 죄악이다) 하면 저마다의 활자로 아름답게 누워 있는 책들만 봐도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그 헛헛한 질투와 부러움에 그만 이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을 필요가 있나 하는 비관과, 급기야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 나까지 책을 내고 싶다고 설치니 또 하나의 인쇄 공해를 쌓아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참 빙충맞고도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제는 조금은 고요해진 마음으로 서점을 찾는다. 나이도 스펙도 성실함도 점점 멀어져 가는 이 상태가 그저 웃음만 나긴 하지만 서점은 내게 일상의 행복감을 주는 현재의 공간이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도착 예정인 미래의 공간이기에 애틋한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 글부터 열심히 써야겠다고, 뜻밖의 바람직한 결론을 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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