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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l 06. 2021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변명

브런치 생태계에 적당한 글의 길이는?

"브런치, 시작은 어땠나요"


글 쓰는 게 좋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브런치를 발견, 글 몇 개로 얼떨결에 작가가 되고는 발행 글이 10개만 되면 주변에 널리 알려야지 하던 때가 있었다. 시쳇말로 '글쓰기에 진심인' 내게 글쓰기는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새끼를 돌보는 일 같아서 남들에게 아직 알려주지 않고 나만 은밀히 찾는 맛집의 최애 메뉴처럼 브런치를 애끼고 애꼈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별 것도 아닐 그 10이라는 숫자만 채우면 어떻게든 '작가다움'이 내게도 생기겠지 막연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브런치, 그런데 왜 많이 못 썼나요"


그런데 그 10이 진짜 큰 벽이었다. 무엇이든지 발산하는 일을 좀 어려워하는 편이고,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해묵은 글쓰기 체증이 단번에 풀리지 않았는지 글쓰는 게 그렇게 좋다면서도 막상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일은 하늘의 계시를 받은 선무당 같은 기분이 되지 않고서는 잘 시작되지 않았다. 긴 글에 사유를 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다. 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면서 막상 짧고 가벼운 글을 은근히 아래로 보며 적당한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길이에 도달하지 못한 글은 잘 취급하지 않는 내적 모순이 있었다. 멋진 사유가 번뜩이고 엉킨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글이라도 길이가 짧으면 작가의 필력과 사유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 잣대는 내게도 엄격히 적용되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8째 글을 끝으로 아주 길고 초조한 휴지기를 갖고 있었다. 그때부터 브런치는 숨겨둔 자식이 되었고 어떤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폭주할 듯 했던 혼자만의 요란한 다짐, 출정식과 함께 시작한 내 브런치는 '장사하세요?'라는 손님의 기웃거림에 '글쎄요, 요즘 잘 못 열어요'라고 답하고 숨어버리는 구멍가게 주인 같은 자괴감만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필력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안 써서 그렇지 막상 쓰면 장난 아니야는 남에게 흔히 듣던 허세가 아닌 내면의 소리였다. 막상 브런치라는 오직 글쓰기만을 위한 전용 플랫폼 안에 승선하고 나니 글을 쓴다는 것이 소질과 적성뿐만 아니라 시간의 소요, 체력의 배분, 성실함의 유지 그리고 냉정과 열정의 조절 같은 참 많은 '작가다움'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행위임을 실감했다. 내면의 허세가 현타로, 현타가 자존감 상실로, 그리고 글쓰기 침묵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런치, 어떻게 쓰고 있었나요'


고등학생 때 나를 '꼬마 시인'으로 불러주시던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감지덕지해서 꼬마라는 말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꼬마는 고3이라는 중대한 시기에도 수능 공부를 하기보다는 시 쓰기로 전국의 백일장을 휘젓고 다녔다. 기본적으로 나는 함축적이고 수렴적이며 모든 것을 다 풀어놓지 않으면서도 외향으로도 아름다운 시적 언어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맨손으로 쐐기풀을 짜던 나희덕의 처연함을 사랑했고 밤바다에서 누님의 치맛자락을 그리워하던 박재삼의 감수성을 동경했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언어의 본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국어 문법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국어라는 학문 안에서도 각각의 세부 학문은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문학이라는 언어 외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가 문법이라는 언어 내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그 산출물의 성격도 변화했다. 언제나 즐겁게 고민하던 형용사가 단순해지고 격하게 아끼던 부사가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짧은 언어를 좋아하던 내가 사용하는 언어마저 화려함이 사라지자 글은 곡선 없이 뚝 잘린 앞머리 같이 흉한, 영 몹쓸 글이 되는 것 같았다. 어떤 격정을 쏟아붇고 난 글도 작가의 서랍에서 맥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브런치, 짧게 가볍게 써도 될까요"


내가 나의 글쓰기 과업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락방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기도 전에 빛발하는 유물들만 대면하기를 바라다니, 그것은 흡사 빈털터리로 전복구이식당에 가서 전복 속에 진주를 발견하여 밥값을 내려는 사람과도 같은 철없는 낙관이었다. 내적 고백으로서의 글쓰기를 한지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인데, 한 편을 쓰더라도 글다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을 허세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이렇게 길고 힘이 들어간 글에 집착하다가는 개점휴업은커녕 폐업으로 갈 것만 같았다.

 

그 집착을 버리려고 '레고는 고양이' 매거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짧은 글을 써 보기 시작했다.


'일단 써보기나 하자니까. 밥집 메뉴판에도 좀 고를 만한 메뉴가 여럿 있어야 사람들이 오지, 요즘 세상에 누가 겉절이 김치 하나 맛있게 담근 걸로 알아주기를 바라나!'


그러고 나서 사람들의 브런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체로 브런치 작가들은 기본적인 필력이 받쳐주는 사람들인지라 1 글 1 깨달음이 뿜어 나오는 멋진 글이 대다수였고 다시 메뉴 고민은 이어졌다. 이런 브런치 생태계에서 '레고는 고양이' 같은 글들은 브런치답지 않은, 브런치에 어울리지 않는 생태계 교란종이 되는 걸까? 하는 또 다른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여전히 묵직한 글을 쓰고 싶은 나만의 열망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지인들에게 내 브런치를 선뜻 펼쳐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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