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과 '권력'에 대한 기억

일곱 살에 맛 본 내 생애 첫 권력의 맛

by 구름 수집가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활발하고 매일이 즐거웠다.

노는 게 좋아서 많은 애들과 함께 어울리며 소꿉놀이, 놀이기구 타기 할 것 없이 하루가 짧았다.


그러던 중 참하고 얌전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 아이가 중간 입학을 했다. 또래보다 제법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틀어 묶은 모습과 숫기 없는 눈빛에는 선량함이 묻어났었다.


그리고 한참은 그 애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느라 바쁘던 내게 그 애가 뭔가를 쑥 내밀었다. 분홍빛이 도는 어른 손바닥만 한 수첩이었다.


'......?'

'.......'


여전히 순하고 뜻 없는 눈빛의 그 애는 그 수첩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었고 그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소꿉놀이를 나도 같이 하고 싶다'는 정도의 의사를 조심스레 밝혔다.


어린 나는 다소 감격스러웠다.


문구류가 귀하던 그 시절, 어린 두 손에 가득 들어차는 그럴싸한 고오급 수첩이 엄마를 통하지 않고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게다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전히 내 능력(!)으로 일군 결과였다.

뭐랄까, 생애 처음 맛본 권력의 맛이었다!


분홍빛은 영롱했다. 반짝거리고 폭신한 에폭시 소재의 뚜껑이 있는 수첩을 열었더니 내가 좋아하던 은은한 수첩 냄새가 났다. 뚜껑엔 도도하게 눈을 치켜뜬 예쁜 언니가 더 예쁜 가방을 들고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고, 내 마음도 언니가 신은 구두와 함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붕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노루 눈을 하고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그 애의 왼손 팔짱을 살짝 끼었다. 그리고 우리의 소꿉놀이 식구는 한 명이 추가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맛본 아찔하고 아련했던 그 맛.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순하던 그 눈빛의 그 친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런 것 없어도 우리 같이 놀자, 할 정도의 아량은 없던 내가 '권력'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너를 떠올린다는 것을 조금은 쑥스럽게 그러나 유쾌하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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