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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l 28. 2021

'침묵'으로 외국어도 배웁니다

침묵으로 연결되는 세 가지 이야기

외국어를 배우는 데 '침묵'이라는 교수법이 있다.

박사과정 때 잠시 귀동냥한 (외국어로서의)한국어 교육 교수법에는 '침묵식 교수법'이라는 교수 모형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외국어를 배우는 데 침묵을 활용한다는 것이.


침묵식 교수법은 학습자의 심리적 장벽을 해소하여 학습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발화를 너무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학습자의 정서적 불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교수자는 침묵을 통해 학습자의 집중력을 높이고 학습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다만 학습 효과를 얻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학습자들이 지루해 할 수 있고, 교수자는 수업 자료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자주 사용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최소한의 설명과 시범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목표 언어를 이해하게 하는 교수법이다.


영어로 밥벌이를 하는 가까운 동생이 그랬다. '영어 배우기 = 성격'이라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영어를 배우기 쉽다는 것. 영어에만 국한된 얘긴 아닐 것이다. 모든 언어의 습득은 화자의 '말하고 싶은 욕구'에 달려 있으니까.

그에 비해 이 침묵식 교수법은 여타의 언어 교수 이론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발화에 대한 긴장과 압박을 주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침묵식 교수법이라는 역발상인 듯했다.


사랑의 장면에서도 '침묵'은 존재한다.

시의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 한강의 <희랍어 시간>에서는 언어를 잃은 여자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사랑이 나온다. (사실,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소설 전개 과정의 90은 각자의 삶이고 나머지 10만이 그들의 만남이다.) 여자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남자는 그 침묵을 몰아세우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소통으로 다가간다. 남자의 어두움을 알게 되었을 때 여자는 여자만의 소통 방식으로 그와 교감한다. 잘 볼 수도 표현할 수도 없지만 그들은 어두움과 침묵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느껴간다. 데워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러나 그 온기는 한참을 머무는 뚝배기 그릇처럼 그들의 만남은 언어 상실자와 시력 상실자라는 처연함 속에서도 지긋하고 온화롭다. 소설에서는 그 둘의 만남만을 보여 주고 끝을 맺지만, 그 뒷이야기가 자연스레 연상이 되는 이유다.


사실 우리는 오늘도 '침묵'과 함께하고 있다.

'코로나'를 인지하고 마스크를 끼기 시작한 것은 2020년 1월 타국에서였다. 치앙마이 한달살이를 하면서 틈틈이 확인하는 포털 뉴스에서 처음으로 '우한 폐렴'이라는 타이틀을 보게 되었고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에 왠지 모를 위기감이 들었다. '여보, 우한 폐렴이 심각해지려나 봐. 왠지 걱정된다.' 이렇게 말을 할 때만 해도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 뒤로도 관련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왔고,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방콕으로 넘어갔을 때는 마스크만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도구였다. 기막힌 우연으로 매연이 심각한 방콕에서는 마스크를 꼭 껴야 한다는 여행 전 지식으로 챙겨 온 마스크 30여 장은 사람으로 꽉 들어찬 태국의 사원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보호장비였다. 그리고 방콕을 빠져나오던 날 포털들은 우한 지역에서 입국한 중국 여행객 소식과 함께 팬데믹의 시초를 알렸다.

(* 실제로 우리와 2,3일 차이로 방콕에 입성한 지인 가족은 3일간의 여행 일정을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호텔 안에서만 있다 귀국했다.)




그때부터 2021년 7월 현재까지 마스크 생활은 1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식당마다 식사 전후 마스크 착용 및 대화 자제를 호소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자연스레 담화는 줄어들고 침묵이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말을 해 오지 않았던가.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서 굳이 지금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닌데도 긴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종교인은 이 마스크 착용이 '침묵하라'는 신의 계시라고도 했다. 말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좀 더 좋아하는 내게 이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오디오가 비는 상황'을 참기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마스크는 한 소리 쉬었다 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고요함의 동조자, 침묵의 반려자가 되었다. '침묵'의 알고리즘은 외국어 공부에서부터 묵묵한 사랑, 그리고 일상의 고요함으로까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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