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유럽에 갈 수 있을까?

성당, 골목, 노천 카페, 납작 복숭아가 그리워서 쓰는 글

by 구름 수집가
2018년과 2019년 여름, 서유럽으로 열흘 간 업무상의 긴 출장을 다녀왔었다.


짐작하다시피 직장인에게 출장이란 서유럽 행을 용인 민속촌에 가는 마음으로 만들어버리는 흑마법의 일종이다.

나 역시 그 흑마법의 주술에 걸려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두 번의 출장을 다녀왔다. 그래도 첫 출장은 개인적인 여행 이후로 십여 년만에 가는 서유럽이라는 약간의 설렘이 있긴 했다. 그래서 조금 뻘쭘한 기대를 안고 가봐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등을 촘촘히 알아보고 나름의 즐거움 속에 다녀왔더랬다. 그렇지만 두 번째 출장은 더욱 업무의 연장으로만 느껴져 사진도 몇 장 남기지 않았었다.


긴 비행으로 이미 지친 몸에 더욱 귀찮은 무거운 짐,

혹시 모를 인종 차별을 의식하며 불평 불만으로 대기하던 길고 긴 입국 심사,

시차 적응의 힘겨움으로 몽롱하던 식사 시간,

자그마한 호텔의 어이없는 엘리베이터,

휴게소 야박한 화장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던 알프스 정상,

격의 없는 관심따윈 거두어 두라는 로마 가이드의 거친 잔소리,

셔터 한 번에 낯선 얼굴 150명이 거뜬히 잡히던 트레비 분수,


유럽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때엔 국경과 국경을 옮겨 다니며 세계인 속에 파묻히는 일이 이렇게 꿈결 같은 일이 될 줄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전 세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풍경들이 너무도 그립다.


아침 입맛을 단박에 깨우던 미지근하고 진득한 호텔 조식 커피,

골목 몇 번을 꺾고 헤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심장으로 훅 파고들던 대성당 고딕 양식,

메이드 인 차이나 싸구려 기념품,

서너 개의 무심한 표정을 지나치다 보면 꼭 한번은 웃는 눈을 만날 수 있었던, 어깨가 닿을 듯한 골목들,

사시사철 그렇게 열어둘 것 같은 고흐의 노천 카페들,

이국의 단 맛으로 침샘을 자극하던 못생긴 납작 복숭아,


유럽은 그렇게 이별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미처 모르고 가벼운 키스 후 헤어진 연인처럼,

조금만 느끼고 몇몇은 남기고 온 유럽의 많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부풀어 오른다.


잠시 머물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삶'이 없는 여행객에게 유럽의 풍광은 참으로 비현실적이었고, 거둘 수 없는 그 거리감이 나는 참 좋았다.


다시 서유럽에 간다면 남기고 오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한 다짐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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