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서랍을 열지 마세요.

누구나 자기만의 지하 1층을 갖고 산다.

by 구름 수집가

사람 자체가 깔끔히 정돈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말씨도, 그 말을 통해 짐작되는 생각도, 그것들이 바탕이 되어 나오는 행동도 모두 깔끔히 정돈된 느낌을 주는 사람들.

나의 동료 P는 그럼 사람 중에 하나였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무얼 물어도 그녀는 늘 정제된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나오는 대답을 정제된 제스처와 함께 설명을 조근히 마치곤 한다. 오죽하면 목소리까지도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기와의 위화감이 전혀 없어 성대를 타고 올라와 혀와 입술, 코 등을 거쳐 바야흐로 발화될 때 그 언제라도 순간의 정적을 깬다는 느낌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은 문구용품을 빌리기 위해 그녀 자리에 간 적이 있다.


-도장밥 좀 있어? 잉크가 다 닳았는지 도장이 잘 안 찍히네.

-어, 잠깐만.


말과 동시에 그녀의 오른쪽 첫 번째 서랍이 열렸다. 문득 늘 그렇게 정돈된 느낌을 주는 P의 서랍은 어떨까 하는 평범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의 서랍은 도장밥, 클립, 지우개, 고무줄, 수정 테이프, 먹다 남은 초콜릿, 오래된 립스틱, 각종 필기구들이 엄청난 자유분방함을 자랑하며 카오스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순간 웃음이 픽 흘러나오면서 한 마디를 한다.


-서랍 안이 이게 뭐야?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한 정리정돈을 보여주는 너도 어쩔 수 없나 보네?

-아, 아무 말도 하지 마. 나 서랍까지 정리하려면 아마 정신병 걸릴 거야.


호수 위의 백조처럼 우아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도 그 이면에서 자신만의 엄청난 물길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서랍 안을 어찌 비난할 수 있었을까? 정리와 정돈은 그녀의 사회생활에서 읽어낼 수 있는 수면 아래의 ‘물길질’ 그 자체로 충분히 가상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서랍을 갖고 산다. 자기만의 밀실, 자기만의 다락방, 자기만의 지하 1층이다. 어쩌면 부대낌이 많은 그 시간 속에서 정리 정돈하기 힘든 그 많은 것들을 그 서랍, 밀실, 다락방, 지하 1층에 모조리 몰아넣고 간신히 올라온 사무실, 광장, 거실, 지상 1층에서 가뿐 숨을 몰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히, 그 사람의 서랍을 궁금해하거나 심지어 열고자 하지 말자. 정리되지 않은 서랍일지라도 그 서랍을 비난하지 말자. 그 서랍을 그 인간의 본성이니 뭐니, 겉과 속이 다르다느니 함부로 평가하며 의미 부여하지도 말자. 누구나 정돈되지 않은, 아니 도저히 정돈하지 못할 서랍 하나쯤은 한쪽에 만들어 놓고 살기 마련이니까. 그녀의 서랍은 충분히 자연스러웠고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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