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뻡

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국어사 2. 새말의 운명

by 구름 수집가
언어는 살아 있다.


언어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어'를 떠올리는 일은 연애처럼 설렌다.

(*'처럼'이라 쓰고 '보다'라고 읽고 싶다. 아, 이거 요즘은 멸종된 어법인가.)


어린 시절, 집 근처 어딘가의 땅바닥에서 꼬물거리는 것들과 반짝이는 것이 섞여 있던 흙가루, 이름도 모르게 피어나던 두 잎 싹과 그 무늬들을 바라보던 매일의 일이 소녀에게 주는 감동이 그랬듯이, 언어를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언제나 같은 날이 없으며 매일이 새롭다. 언어학을 해서 그렇고, 그래서 언어학을 했다.


그 꼬물거리던 것들과 같이 우리의 언어는 살아 있다. 누군가의 필요와 재치에 의해 뜻밖의 한 생명을 얻고, 많은 이들의 입을 거쳐 생동하며, 어느 순간에는 잊힌다. 언어학자들은 이를 언어의 생성, 성장, 소멸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과정은 아주 순수하게 경쟁적이다. 어떤 언어가 만들어지고 즐겨 사용되다 사라지는 것은 생물의 적자생존, 우승열패, 용불용설과 다른 것이 없다. 언어적 환경에 적응되는 것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며, 더 나은 표현이 이기고 그보다 못한 표현이 지며, 자주 사용되는 언어는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발달하고 사용되지 않는 언어는 퇴화하여 없어지게 된다. 신파나 반칙 따위가 발붙일 틈 없는 지극히 냉정한 생태계이다.


국립 국어원의 새로운 세계관, 언어 순화가 아닌 말 다듬기

그러면 이러한 자연 언어적 질서 속에서 임의로 새로운 말을 사용하도록 조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큰 그림으로 특정 단어를 없애고 다른 단어를 사용하도록 조종하는 일은 가능할까?


국립 국어원의 '새말 사업'은 그런 맥락에서 극히 도전적이다. 기존에 잘만 쓰이던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써 보자고 제안한다. 그렇다, 이 일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실시되어 온 이른바 '언어 순화' 사업이다. 사업의 세부 목표만을 조금씩 수정해 오면서 2019년에는 '새말 모임'이라는 형태로 언어 순화의 명맥을 잇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에 나는 2년 정도를 참여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외부로부터 유입되거나 언중들이 새롭게 만드는 신조어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에는 우리말의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준의 조악한, 또는 대중이 수용하기에 너무 까다롭거나 어려운 수준의 단어가 그대로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위험한' 표현들은 고민의 시간과 단계를 미처 거치지 못한 채 그대로 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말 모임에서는 새롭게 유입된 외국어 표현이 언중에 자리잡기 전 좀 더 쉽고 쓰기 편한 대체어를 고민하여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일을 했다.


사실 언어 순화는 요즘 언어학계에서는 잘 다루지 않아 다소 유행에 뒤쳐진, 라떼 시절에나 먹어주던 시들시들한 주제이다.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한 박사 논문은 언어 순화로 썼을지언정, 후속 논문으로는 잘 쓰지 않는 주제라고나 할까.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고 그 텃밭은 자연 생태계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인위적인 조작은 옳지 않다거나 혹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쪽이 점차로 더 우세해진 것 같다. 언중의 언어 선택은 위력으로 강제할 수 없으니까. 여기에 '순화'라는 단어에서 느끼게 되는 거부감('그럼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불순하다는 건가'와 같은 반응)도 크게 한몫했다.


이에 국어원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 순화가 아닌 말 다듬기이다. 안 좋은 것을 좋게 만든다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을 대안으로 제시하여 언중의 선택을 유도하고 우리말 생태계의 건강함을 추구한다는 입장이다.

새말 모임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과제로 선정된 대체어를 위원들에게 제안했는데 대체어를 제안하는 일은 정말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시사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주로 주어졌는데 가스 라이팅, 머그샷, 팬데믹, 언택트 같이 친숙하게 사용되는 단어에서부터 체크슈머, 인슈어테크, 비치코밍 같이 알듯 말듯한 외국어 표현까지 다양했다. 이 중 언택트는 비대면으로, 비치코밍은 해변 정화로 제안되었다. 한 단어라도 쓰이는 맥락이 다양하므로 여러 사용 측면을 고려해야 언중의 선택을 유도하는 대체어가 될 수 있었다.


'리플'이 '댓글'로 정착되었듯이 '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이 사업에서 나온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체어는 '먹요일'이다. 뭔가 왠지 몹시 귀엽다는 인상을 주며 긍정적 반응으로 여러 사이트에 오르내렸던 단어다. 이 단어가 사람들의 호감을 산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단 글자 수가 줄어들어 경제성이 좋아졌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네 글자에서 세 글자가 된 것은 조어적으로 엄청난 절약이고 감량이다.
모국어 화자에게 '먹다'의 '먹-'과 '요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조어 원칙이 쉽게 들어온다. 애초에 '치팅'이라는 단어 자체가 '속이다'라는 비유적 표현이었다 보니 오히려 그날 하루 맘껏 먹는다는 먹요일이 더 의미 전달에 좋다.
영어식 표현에서 국어식 표현이 되면서 친근해졌다. 대개 순화를 하면 영어를 한자어로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알파벳에서 한자로 바뀌었을 뿐 진정한 우리말 대체어는 아니라는 비판이 늘 있어왔다. 오히려 신세대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한자어보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영어가 더 쉽지 않냐는 비판은 뼈아팠다.


'댓글'이 '리플'이던 시절이 있었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맙소사! 리플 시절을 알지 못했다. 한동안의 공존을 거쳐 현재 댓글의 지위는 그만큼 압도적이다. 경쟁어의 존재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이렇게 '먹요일'도 '치팅데이'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당당히 홀로 설 수 있을까?

'-긔!'를 사랑하는 사이트의 회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산 것을 보면, 가능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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