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뻡

불현듯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렸었다

글쓰기가 삶에 필요한 이유

by 구름 수집가
['불현듯'의 사전적 정의]


우연한 단어 발굴


나이가 드는 걸까. 요즘 과거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다시 읽는 일에 푹 빠졌다. 10년 전의 내 모습과 내 생각들을 이제 와서 되짚어 보니 참으로 새롭다. 당시는 대학원 공부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해 나가던 괴로운 시기였기에 사담(私談)을 위한 배설의 공간이 필요했고, 그게 페이스북이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의 글은 9년 전 게시글이다. 육아의 힘겨움과 경이로움, 대학원 생활의 외로움과 고독감, 내 인생 최악의 근무지였던 온갖 직장 욕까지 넘쳐나는 나의 페이스북은 적당히 저속하고 적당히 비관적이어서 선술집이 몰려 있는 심야의 음식거리처럼 흥성거리는 글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추억 놀이에 사로잡혀 글을 읽어내리다가 어떤 문장 속에서 '불현듯'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갑자기 온 신경이 그 단어에 집중되었다. 낯설었다. 내가 이 단어를 쓴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머릿속엔 이제껏 편안하게 써 오던 '갑자기'라는 단어만이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2012년 이후부터 불현듯이라는 단어를 갑자기로 대체하고 불현듯을 입 안에 묻어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21년 8월 31일,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뒤적이던 짧은 글 한 켠에서 '불현듯'을 유물처럼 발굴해낸다.


[당시의 페이스북 게시글. 내용은 의식의 부끄러운 흐름으로]


불현듯,

불현듯,

불현듯,

되찾은 단어를 계속 중얼거리다 보니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 '불현듯' 떠오른다. '불현듯'은 '불+현(켠)+듯'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중세 국어에서 '혀다'는 ㅎ이 두 번 연달아 쓰인 형태였고() 발음은 '혀다'보다 더 공기의 개입이 거세 'ㅎ'과 'ㅋ'의 중간에 가까운 소리가 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이 오늘날 '불을 켜다'가 되었다.

즉 '불현듯'은 '불 켠 듯'의 모양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갑자기 어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을 의미한다. 보통 어떤 생각이 떠오른 순간을 만화에서는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전구나 등불 모양을 그리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문자를 이미지로 정말, 제대로, 잘 표현해 준 것이다.



이해 어휘? 사용 어휘?
자기가 직접 쓰지는 못해도 그 의미나 용법을 알고 있는 어휘를 이해 어휘라고 하고, 수동적 어휘, 획득 어휘라고도 말한다. 말하거나 글을 지을 적에 사용이 가능한 어휘를 사용 어휘라고 하며 능동적 어휘, 발표 어휘라고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용 어휘의 양은 이해 어휘의 3분의 1 정도가 아닐까 하고 추정되고 있다. (출처: 김광해(2004: 57), 국어 어휘론 개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어휘의 양은 이해하고 있는 어휘의 양의 30% 수준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꺼내 쓰진 않는다. 알고 있는 다양한 어휘들이 있어도 직관적으로 쓰일 수 있는 단어들만 꺼내어 쓴다. 대부분은 쉽고, 편하고, 단순한 일상 어휘가 중심이 된다. 쓰지 않고 묻혀 있는 단어들은 한때 큰 기쁨으로 차려졌으나 결국 게으른 주인의 냉장고에서 꽝꽝 얼려진 채 세월을 보내는 벽돌같은 개업떡이나 갈비탕의 운명과도 같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소설 한 편이 있다. 당이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린 빅 브라더의 나라 <1984>에서 작가 조지 오웰은 그 모습을 신어 제조 담당자인 사임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사임은 허기진 듯이 빵을 물어뜯어 한입 가득 두 번을 삼켰다. 그러고 나서 현학적인 열기를 뿜으며 말을 계속했다.
"말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좋은(good)'이란 말을 예로 들어 보세. '좋은'이란 낱말이 있으면 '나쁜(bad)'이란 낱말이 무엇 때문에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그건 '안 좋은(ungood)'이란 말로 충분하다네. 또 '좋은'이란 말을 더 강하게 쓰고 싶을 때 '뛰어난(excellent)'이나 '훌륭한(splendid)' 등 다른 희미하고 쓸모없는 낱말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더 좋은(plusgood)'이란 말이면 넉넉히 의미가 전달되고,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배로 더 좋은(doubleplusgood)'이라 하면 되는 거야."


사임은 이와 같은 언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낱말이 계속 줄어들고 그러면서 의식의 범위도 계속 좁아지게 하여,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어서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 놓자는 것이다. 언어가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쉽고, 편하고, 단순한 일상 어휘를 쓰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삶의 풍요로움과 사고의 자유로움을 위해 상황에 꼭 맞는 말을 꼭 찾아내어 쓰는 인내심을 갖자는 것이다.


'불현듯'도 아주 한참의 시간 동안 내게 이해 어휘로만 머물렀을 뿐, 사용 어휘가 되지 못했다. 갑자기의 세상에서 불현듯의 위상은 흔들렸다. 받아쓰기를 망친 아이의 심정으로 이유를 생각해 본다.


1. '갑자기'라는 쉬운 대체어가 있었기에 표현에 불편함이 없어서

2. '불현듯'은 일상적 구어(口語)보다는 문학적 맥락의 문어(文語)에 가까워서

3. '불현듯' 떠오른 내적 사유의 점등(點燈)이 없어서

4. 글을 쓰지 않아서


1번은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용서가 된다. '갑자기'는 생각할 새도 없이 급하게 무언가가 화자에게 덮친 상황이다. 그것은 내적 외적 상황 모두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두루 통용된다. 2번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먹고 싶어진 진득한 초콜릿 케이크를 불현듯 떠올랐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운 거니까.


그런데 정말 지난 시간 동안 내 안에 어떤 생각이 마음에 불을 켜듯 불현듯 떠오른 적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정답은 4번이다. 지난 9년의 생활에서 내게 글쓰기는 임시 휴업한 가게 같았기에 '불현듯'을 꺼내어 살필 상황이 없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이유일 것 같다.

글쓰기는 그래서 소중하다. 묻어둔 단어를 자꾸 꺼내어 매만지고 보듬고 다듬어 비슷하고 헷갈리는 색깔과 모양을 지닌 퍼즐 조각판에 제대로 안착시키는 가장 멋진 일이니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과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다르니까. 그걸 우리는 아니까. 중학생 때 한 친구의 손금을 보고 우와, 손금이 진짜 확연하네 라고 말한 내게 확연하다는 말을 쓰는 니가 참 이상하다 라고 되짚어준 친구의 핀잔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던 나 아닌가. 내가 글을 써야 하는 가장 합당한 이유 하나를 오늘에서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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