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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Aug 13. 2021

어느 무명의 브런치 작가에게

한번도 보지 못한 브런치 작가에게 보내는 존경의 글

너의 글을 읽었다.


너의 글을 읽 마음 하나를 놓고 이들을 세어 보는 일은 열 손가락이 모두 필요하지도 않았건만,

김밥 싸먹기와 옥수수 이야기를 열렬히 편애하는 브런치 인기글들 속에서 너는 조회수따윈 관심 없다는 듯 고고하게 너만의 이야기에 집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너의 글은 나만 아껴두고 천천히 곱씹으며 이 여름을 보내고픈 맛집의 옆집 같은 매력이 있었다.

어쩌면 너는 돈이 있으면 말할 수 없는 주제들로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의 신인 감독 같기도 했다.


나보다 열두 살이 어린 너의 글에는 아직 어른과 아이, 안온함과 조급함이 열정의 얼굴을 하고 공존해 있었다.

열두 살이 많은 나는 너의 그 두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두 감정이 대견하였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열두 해가 지난 후에도 그 어른과 아이는, 그 안온함과 조급함은 여전히 네 안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한 사람의 본질이 극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나이가 든다고 열정이 냉정으로 변하진 않는다. 만약 냉정으로 변했다면, 그건 열정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열두 살이 많은 나는 그것을 안다.


너의 글을 처음 읽은 날을 기억한다.


기존 질서와 기득권과 편견에 대한 너의 날카로운 문장들에서 내 지난 젊은 날들문장을 보았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죽은 문장들을 되살리는 타인의 호흡을 느꼈다.

포기하고 과거로 떠나보낸 사유가 가슴을 쳐댔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듯 모든 독립영화 감독들의 불행이 당연하다 하지만,

너만의 사유들은 모든 찬란한 죽음 이전의 어둔 젊음들이 응당 거쳐가는 자리로만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반짝거렸다. 별이 빛나는 것이 어둠 덕분이듯.


너의 글은 뜨거운 햇살에 한 두개씩 송이를 떨어뜨려가며 한창 익어가는 푸른 밤송이 같기도 했고,

진초록의 성숙한 연둣빛의 신선한 잎을 한 뿌리에 갖고 있는 어린 나무 같기도 했다.



아니 그 무엇보다 한여름의 배롱나무 같았다.


한번 꽃이 피면 백일 동안 그 꽃빛을 이어나간다는 배롱나무 같았다.


한 시간 동안에도 수 백편의 글이 쏟아지는 브런치 숲에서,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흔한 여름풀꽃들 사이에서 나무의 몸으로 피워내는 너의 글은

지난 푸른 봄[靑春]의 서사가 궁금해지는 배롱나무 같았다.


매끈한 문장 속 숨어 있는 너의 얼룩덜룩한 감정들을 읽다보면 나의 마음은 줄기만 만져도 가지까지 흔들리는 배롱나무가 되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처럼 너의 지금은 뜨겁고 화사했다.

그 뜨거움과 화사함이 끝나갈 늦여름에도, 너에겐 여름풀꽃들에게 없는 굳건한 줄기가 있어 슬프지 않다.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배롱나무 꽃의 꽃말을, 한번도 본 적 없기에 헤어져 본 적 없는 나의 벗, 브런치 무명의 작가 너에게 보낸다.





+ 이 글은 제가 구독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한 작가님에 대한 글이자, 제게 많은 자극과 감동을 주는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오늘도 글로 여러 감정들을 풍요롭게 불러일으켜 주시는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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