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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Nov 18. 2021

임대라는 단어의 온도

그래도 꽤 큰 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동네 중심부 상가 건물 1층에 넓게 자리하던 프랜차이즈 카페가 자리를 뺐다.

사람의 발길이 부쩍 줄어드는 게 눈이 보이더니 결국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빈자리보다 더 공허함을 주는 것은 인정사정없이 붙어버린 저 딱지들이다.

문득 저 단어들에는 온도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임대 문의
권리금 없음


점포 정리는 서늘하다.


폐업은 리다.


임대는 차다.


오가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과 프랜차이즈 카페의 당당함과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커피 향이 가득하던 그곳은 저렇게 하루아침에 사람이 머물기 힘든 폐허가 되었다.

뜬 자리가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쓸데없이 고퀄인 감성인 걸까.


동네 꼬마 친구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약속 장소이자 놀이터였던 팬시 샵도 문을 닫았다. '점포 정리'라는 안내문은 마지막까지 요새를 지키던 백전 노장의 오랜 결기가 한순간에 무너진 백기 투항 같았다. 가끔 급한 물건을 사러 들러 보면 매장은 넓어도 인터넷 업체들에 비해 물건 수가 적고 종류도 다양하지 못해 요즘 같은 시대에 살아남겠나 오지랖을 부렸었는데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10년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게다. 생각지 못한 점포 정리 안내문을 보고 나는 절친했던 이웃의 한밤 중 이사처럼 놀라고 만다.



속 사정이야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더 큰 가게로, 더 좋은 상권으로, 더 나은 수익성의 장사로 옮겨간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지만, 권리금도 없고 이전 안내도 없는 그 가게들의 뒷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점포 정리는 개운한 출발로 채워지기를,

폐업은 정겨운 밥벌이로 이어지기를,

임대는 반듯한 새 주인을 맞이하기를,


아직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불리는 11월, 서늘한 온도와 거친 감촉의 저 단어들이 어서 다시 따뜻하고 묵직한 어감의 단어들로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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