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 극복해 보기

by 우희경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 아이들도 그들의 삶에서 매일 자신과의 한계를 깨면서 산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인인 나보다 더 겁이 없다고나 할까. 목 가누기도 어렵던 아이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금방 뒤집기를 배우고, 엉덩이를 수없이 들락거리면서 이내 기어가기를 배운다. 몇 달에 거쳐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한발 떼기 시도를 통해 아장 아장 잘 걷는 아이가 된다. 그렇게 아이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보통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짓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못하게 하는 제약 조건이 많다기 보다는 생각의 틀을 못 깨는 경우가 많다. ‘나는 못할 것야’라는 생각의 한계가 행동의 제약을 낳는다는 말이다.


요가를 배울 때였다. 고백하건데, 나는 상당히 몸치다. 내가 몸치인 건 사회 초년생 시절 모던댄스를 배우면서 알았다. 남들은 잘 따라하는 동작을 익히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배우다가 학원 원장님이 “음. 희경씨 한국무용이나 조금 정적인 운동을 하시는 게 더 좋으실 거에요” 라는 말을 듣고 댄스를 하기에는 리듬감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조금은 정적인 운동을 찾다가 몸 동작이 과하지 않는 요가를 선택했다. 요가는 정적인 운동으로 몸과 마음의 수양이 필요한 운동이다.

문제는 리듬을 타야 되는 일은 없지만 고난이도 동작을 취하고 일정 시간 버텨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꽤나 오래 했던 운동인데, 요가를 하면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바로 내 한계를 스스로 깨고 나와야 그 다음 도전이 쉬워 진다는 것이다. 요가가 그렇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의 느낌을 참고 이겨내야 다리의 힘이 생겨 그 다음 동작을 버티게 해 준다. 팔을 앞으로 곧게 뻗어 버티는 간단한 동작 조차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팔의 잔 근육을 단련 시켜야 누워서 팔로 버티는 동작을 해 낼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간단한 동작조차 힘들고 어렵다. 몸은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루즈한 상태를 좋아해서 힘든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가 동작을 취하며 참아내는 2~5분 사이에도 수없이 머릿속으로 포기해! 그만해! 를 외치고 있다. 이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면 힘은 들지만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게 한두 달을 자신의 마음과 싸우면서 매번 버티면 석 달째 부터는 조금 동작이 쉬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석 달까지 요가를 버티면 어느 순간, 이 동작을 내가 어렵게 했나 라는 의문이 들만큼 요가 동작들이 쉬어진다. 비로서 왕초보 단계를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이치가 꼭 우리의 인생 같다.

연애의 두려움을 깨면 연애가 쉬워지고, 이력서도 많이 쓰다 보면 잘 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쉬워지는 단계, 잘 하게 되는 단계까지 올라가기가 어렵다. 중간에 힘이 들어 많이 포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세라는 유튜브를 한 3년 전부터 해 보고 싶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사진만 올리면 되는 간단한 구조의 SNS가 아닌 유튜브에 도전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우선, 영상과는 친하지 않았고 편집을 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손으로 무엇을 만들고 조작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던 나에게 유튜브가 넘사벽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유튜브의 시스템을 배워야 하고 편집 프로그램에 콘텐츠 아이디어까지...생각만 해도 부담감이 몰려 왔다.

게다가 지금 하고 있는 루틴한 일들에서 유튜브를 할 시간까지 따로 확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시간관리까지 필요한 작업이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어쩌지?’ 내 머리 속은 유튜브를 하지 말아야 하는 10가지 이유들이 나에게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 포화야. 이게 니가 할 수 있는 한계라고!’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목소리는 한동안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몇 번을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에 지다가 갑자기 “배워. 언제 하니? 하고 싶을 때 지금이 적기야. 대신 아이들이 어리니까 너무 욕심 부리지는 말고 콘텐츠를 하나씩 쌓아간다는 느낌으로 시작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욕심을 버리기도 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영상으로도 쉽게 배운다는 영상 편집을 배우려고 다시 기관을 알아봤다. 일단 배우기나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다. 프리미어라는 편집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고 ‘앗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내가 만만하게 봤어’라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또 나에게 한계를 지어주는 부정의 신이 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채널도 생성하기 전에 편집이 내 발목을 잡았다. 프리미어처럼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핸드폰으로 찍고 핸드폰으로 편집하는 거라며 시작하기에 큰 부담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전환하자 뭐 그리 어려울 것도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년을 기다려 온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황적으로만 본다면 3년 전보다 지금이 더 안 좋다. 우선, 아이가 둘이었고 너무 어렸으며 그때 안 하던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이것 또한 내가 내 상황과 환경에 한계를 짓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고도 기획을 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다. 습관화가 안 되니 시간 분배도 서툴렀다. 그러니 이 작은 도전인 ‘유튜버 되기’에도 매일 내 한계를 깨야 했던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 아니다. 동네 등산도 안 해 본 사람이 갑자기 에베레스트를 등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선, 동네 작은 산부터 오르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단련시킨 사람이 더 큰 산을 올라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산을 몇 번 오르다 보면 에베레스트도 갔다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확장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크고 작든 매일 자신의 한계 앞에서 스스로를 실험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 한계 앞에서 주저앉고 싶다면 아주 조금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걷기 연습을 하는 돌쟁이 꼬마스승님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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