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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희경 Nov 17. 2019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한 동안 이유 모를 조급증이 있었다. 100M 달리기를 하면서 저 골인지점에 얼른 도착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빨리 블로그 이웃도 늘어나고 싶고, 유튜브 콘텐츠도 더 자주 올리고 싶은 조급증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물은  100℃가 되어야 끓는다. 배고플 때 라면 물이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놓이는 냄비는 서서히 물을 데운다. 냄비가 뜨거워지고 그 열이 다시 물에 전도가 되고 도대체 물이 끓고 있는 건가 조바심에 쳐다봐도 100℃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끓지 않는다. 100℃라는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가 빠름에 목숨 건 사회가 되었다. 광속 인터넷을 쓰다가 유럽에 가면 속이 터져 인터넷을 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속 터지는 인터넷의 속도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안 그래도 “빨리빨리” 문화에 젖은 우리나라에서 그 변화의 속도에 따라가려면 조급함이 나도 모르게 생긴다.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나만 못 따라 간다는 느낌. 사실, 이런 느낌도 비교의식에서 나온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조급함을 종용한다.

 대학 때 알던 동기가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였지만 그녀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무언가 나와 같은 유전자의 사람이란 걸 감지했다. 한눈에도 자기애가 강한 그녀는 학과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수업은 결석을 밥 먹듯이 했고 교수님은 그런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쩌다 수업시간에서 보는 그녀는 창밖을 쳐다보거나 혼자 노트에 끄적끄적 낙서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 눈에는 불량 학생이었던 그녀는 내 눈에 무언가를 자기 재능을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 학교에서 볼 때 눈인사를 주고받던 그녀가 불현 듯 보이지 않았다. 

 반면 나는 전공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먹고 살기위해, 학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전공을 바꾸어야 되나 고민을 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전공 공부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하루 였기에 내가 살기위해 살다보니  그녀의 행적은 까맣게 잊고 졸업을 했다. 

 대학 때의 바람대로 전공에서 살아남아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는 멋진 선배가 되었다.기억 속애 잊혀 졌던 그녀의 친한 친구를 우연히 만나면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공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그녀는 자퇴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수능을 공부해서 본인이 원하는 한국종합예술대학에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의 꿈은 극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동기들이 졸업을 하는 나이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몇 년이 흘렀을까. 우연히 그 친구가 생각이 나 그녀의 SNS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바람대로 극작가가 되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도 취미가 있어, 감각적인 사진에 감각적인 글을 써 내는 그녀가 너무나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소신있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어울리지 않은 자신의 것은 과감히 버리는 그녀가 부러웠다. 나와는 정 반대였으니까.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20대 중반에는 ( 너무 어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선택해도 늦이 않은 나이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무척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은 다 졸업하고 직장을 들어가야 될 나이에 나는 다시 수능을 보고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자체가 사실 큰 용기니까 말이다. 그 시절, 나는 용기도 부족했고 남의 삶의 속도에 어긋나는 삶이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뭘 해도 다 용서가 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탐구하고 실수를 해야 될 나이다. 그 어리고 어린 나이에 나는 무엇이 두려워 잘 못된 방향이든 아니든 도전을 못했을까. 그때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야 하고 있으니 뒤 늦게야 삶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게 되면서 1년에 몇 권씩 책을 펴내는 작가들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다르기에 내가 그리 오래 걸리는 원고 작업을 그들은 몇 번을 해 내는 것일까? 내가 게으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론은 그저 사람마다 삶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10대에 또래 친구들보다 자신의 재능을 빨리 찾아내어 10년 이상을 운동에만 매달려 20대에 꽃을 피운다. 반면 내가 아시는 분은 평생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다가 60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박사 학위를 따고 책을 펴내어 당신의 꿈인 작가가 되었다. 지금은 강의도 하신다. 

60년 넘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고 도전해서 얻은 결과이다. 사람마다 각자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 그 시기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길을 가다보면 어느새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의 트랙에서 우리는 100m 달리기 선수의 순발력보다는 마라톤 선수의 지구력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롱런하는 마라톤 선수는 한 번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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