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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Aug 12. 2022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단 하나의 실천

전자책을 읽습니다.

생활에서 미니멀은 저 먼 곳에 있다. 주변의 유아교육자들 대부분은 물건을 버리기 힘들어 한다. '요걸 어떻게 해보면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는 '버렸다가 필요해지면 어쩌지?'를 거쳐 '일단 쟁여두자'로 이어진다. 유치원의 자료실에 일반인(?)이 보면 당연히 버려야 할 엉뚱한 물품들이 많은 건 유아교육자들이 직업상 비슷한 성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카페에 가입해 실천을 하려 노력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요리를 뚝딱해내는 사람, 물건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내 알려주는 사람, 사회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에서 한발 물러나 정말 자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탐구하는 사람 등 카페에는 현명한 사람이 참 많다.


나는 과거와 쉽게 이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특히 좋았던 기억이 담긴 물건을 버리지 못했다. 활용도가 다한 물건들을 커다란 상자에 수북이 넣어 이사 때마다 짊어지고 다녔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의 가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 완전한 새 세상이었다. 예전에는 중고물품을 사용하길 찝찝해했다. 요즘은 거부감이 없다. 돈을 절약하는 차원도 있지만 그보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순환되어 재사용됨으로써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에 공헌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몇몇의 큰 물건을 제외하고 버리는 행위로 비우는 일도 많다.ㅠㅠ 실제로 카페에서는 일정 기간동안 규칙적으로 물건을 비우는 미션도 진행중인데, 한편으로는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는 또 환경에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생각도 든다. 가급적 쓸 수 있는 물건은 나눔을 시도해보기를...)

쓸 수 있는 육아물품을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무료나눔 후, 그 물품들이 여전히 쓰임새를 다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했다.


물건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달라지며 미니멀리즘은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줬다. 스며들듯 오랜 기간에 걸쳐 과거의 물건들을 비웠다. 사연 있는 물건을 비우니 순간의 마음들도 가벼워졌다. 중학교 때 쓰던 삐삐와 내 생애 첫 휴대폰, 학창 시절 다이어리,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 구남친현남편과 데이트할 때마다 모은 영화표와 쪽지, 책장 가득한 책 등으로 가득 채웠던 보물상자에서 정말 상징적인 것만 남겼다. 과거에 행복했다고 생각한 물건의 집착에서 벗어나자 훨씬 가벼워졌다.


가장 비우기 힘들었던 분야는 책이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샀다. 읽은 책을 서고에 가득 꽂아두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책장을 보고 놀라며 "이걸 다 읽은 거야?"라는 말을 할 때 느껴지는 유치한 과시욕을 포기하기 싫었다. 또, 소설과 에세이, 자기 계발서 등으로 가득한 책들을 정리하는 것은 읽어낸 뿌듯함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번의 미루기를 거쳐 큰 결심을 하고 트렁크와 앞, 자리에 책을 가득 싣고 중고서점으로 갔다. 그 자리에서 어떤 책은 팔지 못하고 바로 버려졌고 전집들은 구매한 가격의 반도 못 받았다. 뭔가 억울했다. 책장에서는 위풍당당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인데... 내가 믿어왔던 책의 가치가 경제적으로 나를 배신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을 이고 지고 살았나하는 허탈함에 빈 웃음이 났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니 한두 번 읽었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책에 미안함도 들었다. 물건의 가치는 사용될 때 높아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지라 중고서점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순환시켜 주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였다. 그 후, 아이 책은 중고매장에서 구입하고 되판다.

전자책 읽기에 취미를 붙였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지만 일정 기간안에 책을 읽어내야한다는 압박이 싫어 북클럽에 가입하고 거기에 없는 전자책들은 구매하여 소유한다. 사실 종이책에서 전자책이 익숙해지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상의 대부분에서 지구 파괴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내가 가장 손쉽게 종이자원을 아끼는 방법은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이용한 읽기와 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적응하고 나니 책의 자리는 소장도서를 쌓아가는 가상공간으로 충분해졌다. 현재 나의 서고에는 124권의 전자책이 있다. 어떤 책을 담았는지 제목을 훑어보는 재미도 있다.

또, 박사과정에서 필요한 논문도 가능한 출력하지 않는다. 인쇄되어 몇번 보고 버려지는 A4용지의 부피에 놀라고, 출력된 논문들 역시 '너 아직 나 제대로 모르잖아? 나를 버릴 수 있겠어?'하며 마음을 묶어두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드로우보드라는 PDF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종이 출력물보다 검색도 쉽고 보관도 편리해졌다. 대신 아이들이 그림그리기거나 글을 쓰거나 만들기를 위한 종이는 이면지말고 새종이로 넉넉하게 준다.


한편, 종이책을 구입할 때는 훨씬 신중하다.

가장 먼저 전자책이 나와있는지 찾는다.

없다면 두고두고 읽을 책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지 따져본다.

책장에 꽂을 공간을 생각해본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자책을 소개한다. 익숙해지고 나니 전자책도 감성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거나 책갈피나 메모를 통해 이전의 생각들을 훨씬 쉽게 호출할 수 있다. 부피가 없으니 언제 어디서나 책 읽기가 가능하다. 손가락 몇번의 터치 끝에 책의 무게이동 없이도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전자책을 읽는다.


※ 필요할 때는 일회용품을 쓴다. 배달음식도 종종 시켜먹는다. 물건을 아껴 사용하는 편은 아니다. 드라이브를 즐긴다. 나는 환경을 위한 실천가가 절대 아니다. 전자책 읽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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