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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Aug 23. 2022

지친 마음의 끝에서.

코로나 끝날 무렵에

거의 2주간 몸이 힘들었다. 갑자기 어느 날에 찾아온 코로나는 고열을 주고, 목소리와 냄새를 가져가 버렸다. 매일 약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긴 터널을 지나오며 마음도 역시 지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희미해졌다.


의욕이 없어지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삶의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한순간 빛을 잃더니 꼭 해야 할 일도 미루게 되고, 몸의 이상에 더 집중하게 된다. 계속 밀려오는 잠을 청하고 거실로 나오면 TV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TV에 푹 빠진 아이들을 보면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부분의 날을 '그때 뭐했지?' 할 정도로 기억하지 못할 순간들로 채우면서 1년 중 2주의 시간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며 다시 우울함과 답답함에 빠지는 것이 스스로 이해가지 않았다. 삶에 강박이 있나 보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증상이 가볍게 지나갔다.

두 아이는 싸우고 울고, 웃고, 장난치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하며 나와 달리 침몰하지 않았다. 하루 중 내 기분을 일으키는 유일한 소리는 아이 둘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인데 저장하여 계속 듣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이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입꼬리가 올라가며 나는 일상 속으로 이끌려 나왔다.


코로나 해제와 함께 드라이브 삼아 밖을 나갔던 날, 비가 내렸다. 선루프를 열고 떨어지는 비를 바라본다. 물방울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동글동글 모양을 맺고, 또 많아지며 만나고 흐른다. 물방울의 경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 모습은 잠시 눈에 담겼다가 다시 모두 사라진다. 샤워를 할 때 유리에 맺힌 물방울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데, 운전을 하며 부딪힌 물방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어? 어! 얘도, 쟤도 막 흔들려. 젤리같애 :)"

"여기도 있네. 우하하! 또 만났어.^~^ "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비감상은 물방울의 움직임에 이야기를 붙인다. 어떤 빗방울은 괴물이 되고, 어떤 빗방울은 흘러내려 죽임을 당한다. 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함께 흥분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냥 그런 풍경에 이야기를 붙여내는 아이들의 발견에 나도 마음이 들썩인다. 나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컨디션이 돌아오고 나니, 계속 일어났던 화도 가라앉고 하고 싶은 것들도 생기기 시작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았던 건, 무기력함에 무릎 꿇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로 머물고 싶은, 빛을 바랜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나를 일으킨다.

7월의 하교길에 아이와 함께 감상했던 빗방울들. 물방울마다 건물이 반사되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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