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나의 술친구는 부모님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일과를 마치고 뒷고기집에서 만나 몸에 알콜을 충분히 섞은 후, 노래방에 가기도, 2차로 '한잔 더~!'를 외치며 동네를 누볐다.건배사를 돌아가면서 하고 마지막 남은 소주를 세개의 잔에 공평하게 나눠 마시며계산서와 카드를 내미는 이에게는 두 팔 벌려 박수를!!
대학시절부터 결혼 직전까지 이어진 우리의 술자리 역사는 9년, 취업준비부터 사회 초년생인 내 이야기에 함께 웃고 그 이야기에 취해 나만 울던 따스하고 재미진 기억들은 삶의 보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술잔을 기울일 일은 사라졌지만'생생한 간(肝)의 황금기'를 부모님과 함께 지낸 기억은 여전히각인되어있다.
결혼 후, 신랑에게 '아빠만큼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하고 말할 정도로 기억 속 아빠는 "늘~!" 내 편이었다. 그러던 아빠는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조금씩 변했다. 아빠의 사랑이 내 아이들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아빠는내게때로 갑자기 짜증을 내기도, 화가 난 표정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런 아빠의 모습이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아빠가 나를 '다 자란 사람'으로 인식했음으로 느끼기도 한다. 아빠는 '어린 자들'을 향해서는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의 진단처럼 내 성격은 아빠를 꼭 닮았다. 우리 부녀에게는풍요로운 감정이 있다. 삶의 크고 작은 것에서 자주 감사하고 기쁨을 발견하는 반면, 작은 일에 쪼잔하게 감정을 내세울 때도 있다. 그나마 아빠와 내게 다행인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엄마, 아빠와 거의 매일 통화를 한다. 사건의 아침에는 아빠랑 통화를 하지 않아서 밤 9시가 되어 산책나간 길에 전화를 걸었다. 친구분들을 만나 그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았던 아빠는 전화를 받자마자,
"간다. 간다. 이제 나왔다."하며 짜증을 냈다.
"하..... 아빠! 지금 시간까지,, 저녁은?"
"가고있다!"
아빠는 갑자기 전화를 툭 끊었다.내 말을 잔소리라 생각하고 듣기 싫었던 것이다!!
'방금, 아빠 맞았어?' 황당하고 믿을 수 없었다.
분명 통화품질의 문제일 것이다.다시 전화를 건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아빠가 그냥 끊었다.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나도 갑자기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서 귀에 익숙한여자목소리를 딱 끊어버렸다.
'흥!!!!!!!!!!!!!!!!'
아빠는 딸을 향한 미안함과 멋쩍음으로1시간 안에 전화를 걸 것 이다. 그 전화를 기다릴지, 다른 통화 상대를 찾을지 고민한다. 지난 번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던 친구 생각이 났다(부재중 전화는 늘 숙제처럼 남는다).
'아빠도 잠시 마음 불편해보라지!'
통화연결이 안되면 마음이 불편할 것을 알면서도 아직 고요해지지 않은 나는 친구와의 통화를 감행한다.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통화 후 확인한 문자함에는 아빠의 [콜키퍼-통화중]이 적힌 2개의 문자가 있다. 이건 아빠의 사과신호다.
'그럼 그렇지ㅎㅎㅎㅎㅎ'
예상대로 온 연락에 안심이 된다.
'내일되면놀려야지~!' 사건을 박제하여 보관한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은 회피하거나 끝까지 내지르지 못하는 내가 아빠와의 갈등에서는 나를 그대로 내보인다. 유일하게 아빠만이 내 예상 안에서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겁 많으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내가 사회에서 그나마 기를 펴고 살고 있는 건, 모두 아빠의 공헌 덕분이다. 아빠는 큰 그림을 그렸던걸까? 손바닥 위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 손은 내 손이라 믿고 싶다.
P.S. 신혼때 신랑에게
"아빠가 (나를) 사랑해주는 만큼 사랑받고싶다 ~"했더니 신랑은
"나는 아빠아~닌~데~, 나도 우리 엄마만큼 사랑해주면 좋겠다~"하고 농담처럼 돌려줬다. 대사의 맞바꿈은 놀람과 이입을 불러왔다. 잠시만 생각해도 어머님만큼 신랑을 사랑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세상에서 아빠보다 나를 더 사랑해줄 남자는 없구나~!'를 깨닫고 한동안 슬펐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자와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결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사랑의 색은 정말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