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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Sep 30. 2022

서울 후유증

"당신은 서울에 살고 있습니까?"

지방에 사는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외국보다 더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이다. TV를 통해 생산되는 서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세련되고, 바쁘며, 여유가 없다. 서울여행은 제주도나 부산, 거제도 등을 여행할 때의 설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마치 [서울인 모드]를 탑재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안긴다. '천천히, 조용히, 여유롭게' 살고 싶은 내 삶과 동떨어진 이미지로 가득한 서울, 그래서 서울 방문은 나를 긴장하게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책이나 TV 프로그램 등에서 만나는 '서울'의 이미지가 있다. 영상매체를 통해 접하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것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아이는 한동안 서울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더니 여름 휴가지로 서울을 제안했다. 그렇게 거의 7~8년 만에 나는 서울 땅을 밟았다. 일요일 오후에 출발했더니 목적지까지 6시간 30분이 걸렸다. 고속도로는 충주부터 제 기능을 잃었고, 명절을 제외하고 이렇게 차가 막히는 때가 없어서 서울로 가고 있다는 걸 더 실감하게 했다. 시내로 들어가니 복잡한 길은 내비게이션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길을 잘못 들었는데 15분이 더 걸렸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나온 걸까?

도착해서 끼니마다 가는 곳에는 대기줄이 있다. 

 "엄마, 서울에는 사람 진짜 많아." 

내가 생각한 걸 아이들이 말한다. 다른 이들의 출근시간, 우리는 빌딩 숲을 걸으며 고개를 바짝 젖혀 그 높이를 본다. '우리 지역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나?' 잠시 생각하면서 다시 이질감을 느낀다. 코엑스몰을 걸으며 사람들의 바쁜 걸음걸이와 복잡하게 이어진 길 위에서  위치를 잊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다.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을 가며, 이 길이 맞는지 아이들 앞에서 긴장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여하튼 서울 땅에서 나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다행히 두 아이는 서울 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다음 여행을 서울로 기약한다. 


내가 보기에 신랑은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산다. 우리 지역으로 돌아와 드라이브를 하며 신랑도 서울이 그렇게 발전하는 동안, 지방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걸 강조하며 서울 이야기를 꺼낸다. 고압적으로 높은 건물, 바쁜 사람들의 걸음걸이, 밀도 높은 도시의 공간이 주는 느낌은 자신의 삶이 느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나 보다. 바쁘게 살아야겠다는 신랑의 말에 담긴 의미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서울에 사는 게 아니니 여유롭게 천천히 살자고 생각했다. 


친구와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끝에는 '서울'이 나온다.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게 되면(아이가 어릴 때는 모두 서울의 대학을 목표로 하니까^^;;),  이후부터 아이의 터전은 어디가 될지, 그때 우리 지역은 어떤 상황일지, 서울의 삶이 행복할지, 우리가 지방에 터전을 잡아서 아이들이 힘들게 되면 어쩌나 등등 별 볼 일 없지만 나름 진지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질문의 끝에 최종적으로 남는 질문!


"서울에 살 자신이 있습니까?"


내 대답은 '아니오'이지만 그 뒤에 뭔가 모를 찝찝한 여운이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서울이라는 도시 이미지가 가진 우월성과 지방의 평범한 위치가 가져오는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도시 이미지가 그 안의 삶들의 이미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의 위치가 마치 내 삶의 이미지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 같은 기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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