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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Nov 02. 2022

귤의 변신

'하나 남은 것'이 불러온 귤 그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사탕 하나, 젤리 한 봉지가 생겨도 나눠먹는 암묵적인 룰이 두 아이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한밤 중에 딱 하나 남은  무언의 규칙을 깨고 둘째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에 남은 건 둘째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첫째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다.

귤이 많을 때는 하나 먹어보라 해도 단호하게 '안 먹어, 난 귤 안 좋아해'하더니 역시 '품절 임박', '마지막', '딱 하나 남았습니다'에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장사가 없나 보다. 결국 하나 남은 귤은 첫째의 과일 취향마저 '오빠야가 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로 바꾸고, 두 아이에게 각각의 스토리를 남긴 후, 입 안으로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해야 할 목록에 '귤 사기'의 순위는 최상위다. 학교와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빈 시간 동안 마트를 간다. 낱개 귤을 비닐에 넣다가 지난밤의 사건이 생각나 넉넉히 담긴 귤 한통을 집는다.


식탁 위에 귤 상자를 꺼내놓으니 투명한 용기에 가득 담긴 귤이 다 먹히지 못하고 버려질 염려가 생긴다. 언젠가 누군가의 사진첩을 통해 봤던 귤 얼굴들이 떠오른다. 마침 네임펜이 있어 행운이다.

둘째와 나는 귤 10개씩을 나누고 첫째를 위해 10개의 귤 도화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마구 그린다.

아이들과 뭔가를 할 때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거침없는 아이들과 계속 멈칫하는 나를 발견한다.


둘째(시또)는 "엄마, 여기 좀 봐~!"하고 내 얼굴을 그린다. 세워 그리고 있는 녀석의 행동을 보니 분명 '길~다'를 말하겠다 싶다.(신랑, 첫째. 둘째는 얼굴이 둥((동))그랗다)

엄마는 얼굴이 기~니까 이렇게(킥킥)...(엄마 마음 또르르ㅠㅠ).시또그림

나는 귤 꼭지를 보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할 마음으로 부엉이를 떠올린다.

화투장의 오광같은 부엉이(나 그림)
수염난 아저씨(쭈야 그림)

학원에 다녀와 귤 그림들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나는 안 해'하던 첫째도 귤을 까먹다가 킥킥대며 네임펜을 든다.


식탁 위에는 상상이 담긴 귤들이 가득하다.

식사 후 귤 사냥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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