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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r 16. 2023

심리학과 헤어지기로 했으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2019누리과정이 개정된 배경에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되돌려주려는 노력이 있었다. 개정누리과정 도입 전에도 [자유선택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에서는 하루 1시간 정도의 놀이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때의 놀이는 어른에 의해 의도적으로 학습요소를 갖추고 있는 형태였고, 유치원의 놀이계획에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영역(교과)의 놀이들로 채워졌다. 2019개정누리과정에서는 '누구에 의한'놀이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놀이 주도권을 어린이에게로 되돌려주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혼란이 많다. 교사는 어린이의 흥미와 놀이를 지켜보며 교과의 개념들과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과 주도성을 키워주고 싶은 것은 대부분 교사의 이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질서없는 상태에서 여럿의 놀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교사는 교육보다 '보육'에 중점을 둘 일이 많아진다. '놀이중심'이 강조되면서 생긴 오해들은 '놀이=즐거움만'과 '놀이=자유만'이다. 그러나 놀이안에는 감정의 변화가 급격한 파고를 일으키고 다양하게 얽힌 개인들의 공동 이야기가 있다. 놀이를 통해 어린이는 자신을 향하는 관심만큼 공동체 구성원으로도 자라야한다. 점차 독립적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고보니 말하기는 잘 되는데 '듣기'가 참 안된다.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경험과 겹치는 부분이 나오면 바로 "아, 나 그거 알아요."하며 방향을 틀어버린다. 아이들이 몇 정도였다면 괜찮았을까?

27명의 아이가 대집단시간에 한마디씩만 해도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버겁다. 그래서 듣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3월에는 중점을 두기로 했다.


행동주의가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인간관을 전제하기때문에 스티커, 상 같은 것은 선호하지 않았다. 도장을 찍어주는 것도 아이의 성향을 길러주는 것보다 바로 주어지는 보상에 목메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나는 '듣기왕, 표현왕, 어울림왕, 배려왕, 대장대원'같은 뱃지를 많이 만들었다(가능하면 반아이들의 강점들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성향으로). 그리고 행동주의 인간관을 떠올리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오늘 아이들에게 기본뱃지를 골고루 나누어주며 앞으로 가져갈 뱃지의 성격을 알려줬다. 그리고 비록 보상과 강화에 의한 것이지만 내가 어린이를 애정으로 존중한다면. 괜찮지 않을까...?하고 마음의 벽을 살짝 낮췄다.


발달심리학이 어린이를 특정연령 발달수준으로 (미리 그 수준 이상은 못할것이다)한계짓고, 발달 외에 다른 시선으로 어린이를 바라보기 불가능하게 견고한 벽을 쌓아두었기에 박사과정에서는 대안적인 다른 관점들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공부를 해왔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다양한 학문들의 짬뽕(?)같아서 부모상담 때 발달이론이 필요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육아꿀팁이 필요하기도 하다.

생활인으로의 교사(나)는 이미 혼합하여 살고있는데 마음의 무거움을 가진 연구자(나)는 생활인의 삶을 계속 점검하며 무거움을 계속 더해간다. 생활인으로의 엄마(나)는 널부러지고 버럭하기도 하면서 교사인 나는 은연 중에 '좋은 엄마'를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불편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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