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Mar 23. 2023

엄마의 100점 욕심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받아쓰기 급수와 함께 문제 목록이 같이 왔다. 내가 받아쓰기에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를 닥달하게 된 것이다. 예전과 달리 2학년 아이의 성격은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시험]이라는 단어에 나는 더 불안해졌다.

알림장 문구: 받아쓰기(시험 예고 후 칩니다. 가정에서 보관하고 공부하세요)

그리고 받아쓰기 이틀 전, 알림장에 [받아쓰기 1급 시험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퇴근하고 알림장을 바로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칫 실수로 보지못했다면 아이에게 '관심없는 엄마'이미지가 생길 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함께였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틀리며 배우는 건데, 다 맞아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현실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받아쓰기 시험친다는데 공부해야하지 않아?"하고 묻고 있었다.

"응, 근데 내일 아니잖아. 그 다음날치니까 내일하면 돼."

끄응...그래.

퇴근 후 피곤했던 나는 학원까지 다녀온 아이에게도 이입되어 같이 다음날로 미뤘다.


다음날이 되었다. 전날의 약속이라 꾸역꾸역 앉아 받아쓰는 아이의 모습에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받아쓰기를 불러주는 목소리에 화가 실렸는지 아이는

"엄마, 화 내는거야?"하고 묻는다.

나는 감정을 묻은 채

"아니야"하고 말하지만, 아이가 눈치 못챌리없다.


결국 날카로운 화와 눈치보는 아이의 여림은 교차했고, 번개같은 순간들이 우리를 관통했다. 나는 화를, 아이는 눈물을 정리해야했다.

잠시 공간의 헤어짐을 택한 후 오촌 조카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치고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는 숙제가 있었다. 받아쓰기를 많이 틀린 아이에게 선생님은 부모님의 반응을 물었다.
"엄마가 시험지 보시고 뭐라고 하셨어?"

"사람마다 잘하는 건 다르다고 괜찮다고 했어요."


나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많이 틀려서 속상해할지도 모를 아이의 모습, 주눅들까하는 걱정, 실패의 반복으로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그 말을 막아섰다.


둘다 마음이 잔잔해진 후 다시 대화했다.

"받아쓰기하는데 친구들은 안 틀리는데 너 혼자 많이 틀리면 기분 상하지 않겠어?"

"응, 괜찮아."(나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속상해할 시간이 아이에게 더 값진 것일 수 있음을 외면했다.)


 나는 거짓말했다.


"그래, 니가 괜찮으면 엄마도 괜찮아(아니다). 엄마는 니가 속상할까봐(사실 내 욕심으로 화를 냈다) 그랬지. 화내서 미안해."


다음날 아침,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아이에게 좋은 하루 보내라고 편지를 적었다.

아이는 현관문까지 나왔다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준다. 덕분에 나와 신랑의 하루가 웃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곳곳에 핀 봄꽃이 보였다. 운전 중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새잎, 파란 하늘을 보며 불현듯 내 모습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내 삶이  '숲'이라면, 나는 왜 '나뭇잎 한 장'에 그렇게 화를 냈나하는 생각과 함께 아이에게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달라. 그러니까 틀려도 괜찮아. 대신 뭘하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아이는 하교하고 문자로 받아쓰기 결과를 보내 자랑해왔다.

마음은 갈대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는건 참..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깨달은 것.

당장의 결과보다도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아이의 전체 삶에 더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키우며 받는 효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