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Sep 23. 2023

정책이 삶에 주는 영향

유보통합 논의 이후로 나는 무기력하다

올 2월, 아는 어린이집 원장님께 처음으로 유보통합 이야기를 들었다.

"에이, 설마, 그게 그렇게 될까요?"

유보통합은 학부시절부터 줄곧 부처통합이 되지 않는 묵은 난제였다. 그러나 나의 학부시절 부처통합이 필요하다는 측의 의견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당시)로 나누어진 부처를 교육부로 가져 옮으로써 아이들의 '교육' 연계가 쉬워진다는 이점을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의 경력을 상호 인정해주지도 않을 만큼 두 기관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지금은 경력에 유치원교사와 어린이집 교사의 경력을 함께 합산한다). 만 3~5세의 교육과정이 통합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경계는 예전보다 낮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다르다고 생각해 왔던 건 유치원은 유아에 중심을 두지만  어린이집은 보육기능에 좀 더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어떤 기관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유아를 중심에 두고 교육할 수 있는 유치원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사립유치원 원장님께도 5월쯤 의견을 물으니

"유보통합 이야기만 몇 번째인데? 시끄럽기만 하고 안될 거예요."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오는 정책들은 점점 더 어두운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느낌이다.


나는 유아교육을 공부했다. 거의 20년을 함께한 학문이다. 열심히 했다. 이 학문 안에는 시절마다 에피소드를 채워간 친구들, 교수님, 그리고 우리반이었던 아이들과 공유했던 다양한 사건들까지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그런데 학회의 홍보문구에서도 돌봄이 교육보다 먼저 내세워진다. 나는 영아를 모른다. 내가 경험한 영아는 우리집 두 아이뿐이다. 유치원교사와 보육교사는 전문성의 분야가 다르다.

아이를 키워보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영아기에서 유아기는 조금 더 많이 다르다.


유보통합 논의 이후, 어린이집 관련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 조심스러움이 생긴다. 혹여 내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아이를 사랑하고 헌신해 온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는 유보통합이라는 정책 앞에서 서로 대치하는 영역에 선다.


'유아기'란 무엇인가?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좋은 배움은 어떤 것인가? 아이의 흥미와 학문을 연결하기 위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부모에게 아이를 위해 연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런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들에 끊임없이 대답하려 애쓰며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유보통합논의 이후, 이런 질문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유아교육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어지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동가족학과에서 상위 10퍼센트 석차로 유치원교사 자격을 딴 친구가 말했다.

"너는 유아교육과라 좋겠다. 정말 유아만 전문적으로 공부했을 거니까"

당시 나는 [유아교육]이라는 학문이 뿌듯했다.

그러나 투명하지 않은, 현장 누구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유보통합으로 요즘 나는 무기력에 빠졌다.

정책이 변화하는 틈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로 그려지는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진다.


연령이 구분될지 아닐지, 교사의 자격은 어떻게 한다는 건지, 나는 돌봄보다 아이의 교육을 우선할 수 있는 교사일 수나 있는 건지 아닌지......


이런 논의들이 제 갈 길을 걷고 있는 내게는

"네 길은 없어질지도 몰라."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이유





작가의 이전글 추모공간에 다녀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