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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Oct 11. 2023

유치원 교사의 상담기간

엄마가 엄마에게

 나는 유치원 교사다. 올해는 학부모 교육 업무를 맡았다. 7살, 9살 아이를 둔 엄마로 학부모 교육을 담당하면 같은 엄마로 이입하게 되는 일이 잦다. 원래 유치원은 학기별로 정기 상담기간을 가진다. 최근 교권 강화로 인해 학교는 수시 상담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학부모 교육 업무의 담당자로써 나도 한번쯤 관리자에게 수시 상담으로의 변화를 건의해볼 법도 했다. 그러나 여름방학동안 상담 계획을 기안 올린 나로서는 이미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유치원의 상담기간에 교육과정 교사는 바쁘다. 1시까지 아이들과의 일과를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와 상담 준비를 한다. 보통 1시 30분부터 20분 상담과 10분 휴식의 텀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이번 정기상담은 화~금까지 4일밖에 되지 않고 우리반은 모두 26명이라 나는 1시 20분부터 20분 상담과 5분 휴식의 텀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6명, 적은 날은 5명으로 상담을 배치하게 됐다. 다른 학급도 마찬가지다. 급당 인원이 많다보니 교사들은 아이들과의 하루일과를 마치고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상담 업무에 임하게 된다.

 학급별 상담은 담임과 학부모의 시간이다. 학부모 교육 담당으로서 내 업무는 상담을 계획하고 대면 상담인 경우 학급별로 상담실을 배정한다. 상담에 필요한 책상을 상담실마다 옮기고 천으로 책상보를 씌우며 상담실에 적합한 다과를 준비한다. 정리를 하고 다음날 상담실을 정비한다. 그 사이 나는 우리반 학부모들과 상담을 이어나간다. 

 1학기 정기상담을 끝내고 나서 입술에는 포진이 생겼다. 그만큼 학부모 상담은 피로도가 크다. 왜냐하면 아이의 상황을 얼마만큼 알려줄 것인지, 학부모의 성향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내용들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아이의 문제 상황이 있다면 상황 묘사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지 등을 전반적으로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상담에 앞서 매번 스스로에게 되내인다. '유아교육을 전공했다고 내가 아는 방식이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 '동반자적인 관계임을 한번 더 알리기'


 상담을 해보면 교실에서 적응을 잘 하고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아이에 대해서는 같이 기분이 좋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집중을 못하고 친구를 방해하거나 전체 활동의 흐름을 방해하는 아이의 경우 교사는 많은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단지 신세한탄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20분의 상담 시간은 매우 짧게 느껴진다(잘하는 아이의 경우 비교적 상담 시간이 짧다). 오늘은 4명의 보통 아이와 2명의 상담이 필요한 아이의 학부모를 상담했다. 아이의 상황을 안내하면서도 듣는 엄마가 가질 마음의 무게를 알기에 나도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아이의 상황을 외면하거나 잘하고 있다는 말로 엄마를 안심시키기에는 교사이며 엄마인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 듣는 엄마와 말하는 내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어찌 저찌 오늘 하루에 주어진 상담을 무사히 잘 마쳤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후에도 마음이 무거울 학부모의 입장에 이입이 되며 불편하다. 한 인간이 자라나는 일에는 주변인들의 고민과 갈등, 노력이 이렇게도 무수히 필요한가보다.


정기 상담의 장점은 괜한 오바처럼 보이지 않고 아이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제 상담을 한 5명의 학부모 중 3명의 학부모는 '신청하지 않으면 무관심하다고 생각할까봐' 상담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자주 통화해서 궁금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아이의 정기상담 신청서를 받고 '내 아이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할까봐 상담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다(그리고 학부모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니 같은 경험을 한 친구들이 많았다). 교사의 입장에서 상담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가정에서 정기상담일에 상담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 [고맙다]. 이번 주는 내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오후 상담을 위하여 체력을 조절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번 정기상담이 아이-학부모-교사의 공동체에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끝나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도 상담일정을 계획할 때 수시상담으로의 전환도 건의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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