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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Oct 18. 2023

법과 법 사이

교권과 아동학대방지법

7월,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후에 우리 사회에는 교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곪아 있던 교사들의 상처들은 더 드러났다. 나 또한, 유치원 교사를 하며 부당하게 사과해야만 했던 기억들, 억울함, 시스템이 교사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좌절들이 함께 떠올라 마음이 참 힘들었다. 그리고 나이만 중견교사(긴 휴직으로 인해 실경력은 적지만)지만 어린 선생님을 함께 보호해주지 못한 책임들도 떠올라 스스로의 비겁함에 초라한 기분도 들었다. 교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8월, 좋아하는 기자가 쓴 '아동학대'관련 기사를 읽었다. 눈물이 났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 기부 신청을 했다.  지원하는 곳 중 가장 큰 금액으로... 학대당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밝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것 중 내 선에서 가장 손쉬운 선택이었다.


8월의 어느 날, 내가 가입한 교사단체에서 아동학대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서학대 조항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공감했다. 또 8월의 어느 날, 우연히 접속한 아동학대방지협회 홈페이지에는 아동학대법 개정을 반대하는 팝업이 떴다. 혼란스러웠다. 교사들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정말' 학대당하는 아이의 경우 법이 없어지면 처벌도 불가하기 때문이었다. 공감했다.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률이 가장 큰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한쪽에 서야 했다.


요즘 유치원과 학교 현장은 교권보호를 위한 고시 이후 규칙개정에 한창이다. 8월의 어느 날, 법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그렸던 나였지만 유치원 현장에서 오롯이 교사의 입장에서 회의에 참여했다. 아이와 교사와 학부모의 얽히고설킨 선들 사이에서 좋은 의도였다 할지라도 불운하게 협박당할지 모를 사건에서 교사를 보호할 최소장치가 규칙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상황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용기 내어 교권의 입장에 섰다. 정말이지... 우리 유치원 교사들은 내 아이의 담임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할만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권보호 고시의 경우 학생의 분리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의 교권보호를 위한 해설서에는 분리 조항이 빠졌다.  일반적으로 우리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아이를 개별 지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무서운 이야기지만 이미 상식적인 선을 넘은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는 아이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아이만 혼자두지 않는다. 꼭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교사와 함께이다. 그런데 이 조항이 빠져서 아이의 지도를 위해 다른 교사 또는 원감, 원장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했더라도 반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로 교사를 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부모가 만드는 유치원규칙이 다시 교사를 보호해 줄 수 없는 장치가 될까 두렵다. 결국 나도 아동학대방지법의 정서학대 조항을 수정하기를 바라는 입장에 서게 됐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여전히 법이나 규칙 따위가 필요 없는 유치원과 학교 문화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은 올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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