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Feb 24. 2024

23학년도의 마지막 출근

 마지막 출근일이다. 업무분장이 마무리, 학급 발표와 1년을 함께 꾸려갈 파트너 발표도 모두 마쳤다. 업무 인수인계와 교실 인계까지 마치면 떠나는 자의 일은 모두 끝난다. 이 기관에 새로 들어온 자와 있던자의 경계는  그 발표를 기점으로 기관에 속한 자와 떠날 자로 구분된다. 한 순간에 이 기관에서 낯선자가 되어 붕 떠 버린 자들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편안하게 내 자리에 앉아 있던 여유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이 공간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면 눈치를 보며 옆으로 자리를 옮기기 바쁘다.


휴직으로 자리를 잃은 나와 타 기관으로 발령이 나서 자리를 잃은 선생님, 우리 둘은 스스로를 메뚜기 뛴다고 표현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많은 정성을 들인 장소와 헤어지는 것에 공들인 노력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듯, 단절의 벽이 턱하고 생겨버린 같아서 시스템에 대해 서운한 마음도 함께 든다. 그러나 이 유치원에서 어떤 업무, 어떤 연령, 어떤 자리를 맡았던 상관없이 가장 부러움을 받는 자는 휴직에 들어가는 '나'다.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내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있지만 '어때요?'하고 물으면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답은 단 하나, '좋아요'다.


교사 1~2인이 모든 일을 하되, 동료가 없어 외로웠던 병설유치원과 달리, 단설유치원에서는 매번 누군가와 마주치고 말을 섞는다. 높은 밀도의 1년이었다. 다행히 동료들이 모두 둥글둥글하고 배려가 높아서 든든하게 지지받는 기분이었다. 여러 이야기는 넘쳐났고 감정의 파고도 깊었지만 곁에 있는 누군가들이 언제나 함께 있었고 그 느낌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서로를 잡아주었다. 함께 지낸 기억들은 스며들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갔다.


아이들이 졸업하던 날, 미리 짐을 빼두었다. 그래도 나오는 길에 내 손에는 몇몇 짐이 들려있다. 선생님들이 챙겨준 몇개의 선물과 편지, 아쉬운 마음들과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들. 그런 의미다. 유치원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잠시 떠난다. 건물 안에서 동료들과 헤어지는 서운한 마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모두 흩어지며 시원한 마음만 남은 것은 건물이 가진 물리력의 힘인가?^_^


9월까지 즐겁게 육아하다가, 무탈하게 동료들에게 돌아가자!!


작가의 이전글 법과 법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