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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r 06. 2024

육아휴직자의 일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맞이하기까지 2시간 30분.

 3월 6일이다. 휴직에 들어간지 6일째, 뭔가 바쁘게 살아야 할 것만 같다. 9시, 초등학교 적응기간인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목적은 없이 의욕만 있는 나를 본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우리 둘 다 올해 둘째의 입학으로 육아휴직에 들어왔다.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고 꽤 오랜 통화를 하면서도 늘 마지막에는 '만나서 얘기하자'다. 통화를 하며 걷다가 발견한 카페로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뷰라고 할 것도 없지만 왠지 2층으로 가야할 것 같아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사촌언니에게 전화한다. 사촌동생이 얼마 전 들여온 햄스터 얘기와 아이들의 3월 모습, 어제 수영장 가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한다. 집에 들어오니 10시 20분다.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가기까지 2시간이 남았다.

 직장에 있었다면 수업시간일테다. 매우 바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질서를 유지하려 발버둥치고 있겠지. 그러니 더욱 바빠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진다. 무엇을 향해야 할지 모르는 의지를 집안일에 쏟는다. 1시간 동안 집안 정리를 했다. 버릴지 가질지 갸우뚱하게 하는 물건들은 버려질 때까지 한결같은 갈등을 불러온다. 버리기를 미루던 물건 중 몇 개를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불과 몇 주 전인것 같은데 곧 사용하겠지 하며 기다려온 날들이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난 것들이 있다. 특히 재작년 복직을 앞두고 체력 걱정에 몸에 좋다던 액상 비타민을 두 상자나 샀는데 서랍을 정리하며 발견하고는 유통기한이 남아 다행이라 안도하는 나를 보며 한심함을 느낀다. 나는 충동 구매자다. 아직 우리집에서 생존하고 있던 물건들을 이제 치워낸다. 

 '왜 이렇게 정리가 안되는 걸까? 내 재능은 직장에 있나봐'하며 일할 때는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직장인으로의 유능함이 마치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복직동안 엄마가 집안 일을 도와주셨는데 내 앞의 어지러운 물건들을 바라보며 역시 그녀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능력자라고 느낀다.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엄마는 오전 시간의 일과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생각나는대로, 되면 하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식이다. 집안 일은 기분에 따라 결정되므로 늘 정돈되지 못하다. 일을 할 때는 주말만 신랑과 간단히 정리를 하면 되었지만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만의 시간이 조금 더 생겨서인지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워진 것 같다. 아무도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 

 11시 20분. 노트북을 켰다. 식탁에 앉아 정리된 거실과 주방을 바라본다. '정리가 된 것인가?' 의문스럽다. 나는 정말 정리에 재능이 없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라던데 아직 더 버릴 물건이 남았나? 아이들이 만든 여러 작품(?)들을 보며 '물어보고 버려야 하니까'하며 정리 덜 된 탓을 해본다. 평화로운 시간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계획대로면 나는 점심을 먹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왠지 점심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어제처럼 아이는 '왜 아직 점심을 안 먹었어? 나는 급식을 많이 먹었는데?'하며 말할 것이다. 그럼 나는 집안 일 핑계를 대겠지. 아이를 보내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면 모든 시간이 충분했을텐데, 그래도 아침 시간의 여유와 수다는 필수였기에 어쩔 수 없다.

 저녁은 뭘 해먹을지 고민한다. 냉장고에서 엄마의 메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러나 엄마가 해주신 미역국, 곰탕 찬스는 이미 썼다. 그리고 엄마 찬스가 끝나기 전에 쿠팡에서 집 반찬 메뉴들을 주문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냉동식품을 굽고 순두부를 꺼내 양념장과 함께 저녁을 먹어야겠다(할 수 있겠지? 요리에 실력은 없는데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만 있어서 계획과 달리 매번 메뉴는 바뀐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행복'과 '기쁨'의 감정들을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덜' 화내기를 다짐하며 아이를 데리러 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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