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연속, 일하다 쉬는 하루가 주어지면 축 늘어져 있다.
자유시간의 나는 이렇게 늘어져 있는데 일하는 날의 하루 중 무엇이 나를 빠르게 굴러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방학이라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낸 아이가 학원으로 가며, 엄마는 하루 종일 집 밖에 안나가도 되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불쑥 [엄마도 너만큼 바쁘단다]라 말할 반박한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아이가 문을 열고 나가는 동시에 나의 바쁨도 함께 따라 나갔다. 사실 말 뿐, 바쁜 일이 없다. 느긋한 2시간의 여유를 보내고 둘째를 마중하면 오후의 중요한 일정은 끝난다(물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마음 먹기에 따라 바빠질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이것들은 선택사항이다).
나는 천천히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커피를 한 잔 내리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로봇청소기를 돌릴지 고민하다가 음악을 듣는데 거슬릴 소음을 생각하며 내일로 미룬다. 휴대성과 작업 능률을 고려하여 몇날 며칠 고민하며 구입한 노트북의 뚜껑이 천근만근 되는 양, 노트북을 켜는 행위 하나-하나가 하루의 큰 일처럼 느껴진다. 어쨋든 오늘은 노트북을 열었다!
얼마 전, [쓰고 싶다-쓰기 싫다]의 마음이 반복된 책 한 권을 접했다. 어떤 이는 너무 가벼운 일상은 글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쓰고 싶다가 쓰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했다. 문단별로 주제가 다른 듯이 느껴져서 두서없이 그냥 손가락의 흐름대로 쓰여진 듯 느껴진 글이었는데 피식, 곳곳에서 공감되는 마음이 느껴져 자꾸 웃음이 났다. 가볍게 쓴 글은 읽는 마음도 가볍게 만들었다.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면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루에도 읽을 거리는 수없이 쏟아진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읽을 거리는 뉴스 기사다. 기사 댓글에 달린 [이런 것도 뉴스냐? / 이런 내용은 일기에 써라! ] 등의 내용에 때로 맞장구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자주 눈에 띄어서였을까? 나는 뉴스를 쓰는 사람도,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도 아닌데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쓰는 것이 즐거웠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쓰는 것이 두려워지고 풀어내지 못한 마음은 복잡하게 얽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 그럼 다른 걸 읽기라도 하자.]
집에 있는 책을 읽어도 될텐데 책을 고르는 것도 때론 귀찮아(책을 고르기 전, 분량과 재질, 그 날의 느낌 등등 생각보다 고려할 것이 많아 쉼을 위한 시간이 고민의 시간으로 빠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북리더기를 샀다. 휴대폰으로 읽어도 충분하지만 새로운 기기를 사용해보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컸고, 얼마전 동생이 가지고 다니던 이북리더기가 그런대로 폼나 보였다. 많이 줘도 8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이북리더기는 인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고려해야 하는 사항도 기기별로 다른 것 같았다. 책을 읽으려 했던 나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이북리더기를 검색한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에 고민한다. 이 돈을 주고 사야하나? 휴대폰으로도 충분히 잘 읽잖아? 그런데 눈이 피곤하긴 하지. 휴대폰은 들고 읽기 무겁기도 하지. 그래도 꼭 필요할까?(사실 '꼭'이라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마음은 구입하는 쪽으로 기울었기에, 단지 구입 전 쓸모없을 것일지도 모를 것을 위한 죄책감을 버리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그리고 마침 복지포인트가 생겼다. 나는 주로 복지포인트로 책을 구입하기에 그럼 이북리더기를 사야겠다고 쉽게 마음을 먹었다. 복지포인트는 신기하게 생돈이 나가는 느낌이 아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연내 소진해야 하는 포인트라 항상 호기심이 일거나 쓸데없는 물욕이 생긴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하게 되었다(예전엔 물걸레 청소기를, 스팀 다리미, 통기타 등을 샀다). 장바구니에 담고 포인트로 결재했다.
두근두근, 하루만에 이북리더기가 왔다. 택배를 뜯을 때는 별 설레임을 느끼지 않는데 제법 갖고 싶었는지 빨리 뜯어 전원을 켜고 싶었다. 두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어떤 기기인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만~!"하고 큰 소리를 외친 다음, 택배 상자를 뜯었다. 그리고 필름지를 붙일 때는 모두 정지 상태, 엄마에게 말 걸기 금지를 걸었다. 숨도 쉬지 않고 먼지를 체크하고 조심조심 붙였지만, 경험의 부재로 처음은 잘못 붙였다. 다행히 쉽게 떨어져 동봉된 다른 스티커로 다시 먼지를 제거한다. 성공적으로 필름지를 붙였다. 그리고 전원을 켰다.
'으잉???응?????'
이북리더기의 상태가 정상임에도 느린, 구형의 느낌이 느껴졌다. 내 이북리더기는 신상이다. 그럼에도 드는 구형의 느낌은 상당한 당혹감을 준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북리더기를 쓰는 이유가 있겠지......하며 적응해보기로 한다. 이북리더기에 커버를 씌우니 휴대폰의 무게와 별차이가 없다. 또 당황한다. 커버를 뗀다. 그리고 스트랩을 다시 주문했다.... 낭만은 원래 멀리서 보았을 때 가능한 것인가? 동생이 가지고 다닐 때는 제법 멋이 나는 듯 보였는데 느린 속도, 화면의 잔상, 흑백... 이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러면서 '그래, 책이니까... 너무 쌩쌩 돌아가면 책 느낌이 없지!'하고... 휴대폰으로 이북을 읽을 때보다 안정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하자]
게으름을 이북으로라도 조금씩 채워볼 예정이다.
*****3월부터 다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휴직기간동안 미루어 두었던 숙제, 이미 써온 휴직기간들(이번 것까지 포함하여 8년)을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게으름 앞에 무너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