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주변 모두가 학부모됨을 축하했다(첫째와 둘째 모두 육아휴직으로 입학 현장에 함께했다. 아이의 시작을 응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유치원 시기를 지나며 엄마로서의 자신감이 점차 옅어지는 것 같아 나는 조금 불안했다. 코로나로 첫째는 입학식도 없이 학교로 들어갔던 터라 둘째라고 입학식 전에 가지는 고민이 없지 않았다. 꽃다발을 준비해야 하는지, 선생님 이야기에 집중은 잘할 수 있을지, 자기 반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학교 공간을 차갑고 딱딱하게 느끼지는 않을지 등 고민과 걱정은 밤새 나를 따라다녔다. 해가 밝고 신랑이 제일 먼저 출근하고 이어서 첫째가 등교했다. 평소 같으면 신랑과 함께 집을 나서야 했지만 마지막 남은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을 수 있는 나는 휴직했음이 실감 났다. 그리고 6개월을 잘 채워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잠깐 생각했다.
집에 남은 둘째와 나는 10시 30분까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예쁜 옷을 입고 ‘엄마, 나 만들기 해도 돼?’ 묻는 아이에게 시간은 충분함을 알려줬다. 나는 괜히 ‘입학’이라는 단어에 갇혀 아무것도 못 하고 마음만 복잡해졌다. 아이가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10시 10분이 되어 집을 나섰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맞춰 걸었다. 입학식에 가는 1학년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팔을 흔드는 모습에 저마다 설렘의 리듬이 느껴졌다. 나와 둘째 아이 사이에서는 어떤 리듬이 보일지 궁금해졌다.
학교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입학식장으로 들어갔다. 강당 입구에서 엄마와 분리되어 어린이들은 학급의 의자에 앉혀 졌다. 둘째의 얼굴은 때로 굳고, 때로 두리번거리고, 때로 웃었다. 어릴 때 입학식의 장면이 떠올랐는데 7살의 나는 갑자기 줄이 세워지고 1학년 3반 교실로 담임선생님을 따라 이동했다. 갑자기 딱딱한 차가움과 단호함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다행히 나의 아이는 낯설고 긴장되지만, 설렘이 더 큰 기분인지 마주치는 눈길마다 웃었다. 첫째와 둘째의 성장을 보며 남편과 늘 이야기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보다 우리의 아이들은 훨씬 잘 해내고 잘 크고 있으니 우리는 이미 성공했다고!
1시간의 시간을 보내고 온 아이에게 학교의 이미지를 물었다.
“재미있던데?”
선생님을 따라 운동장으로 줄 서 이동하면서 보인 긴장된 표정은 잊어버렸는지 아이는 가볍게 말한다.
“내일부터는 점심도 먹고 온대.”
학부모 O.T에서 들은 말을 하자,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나도 선생님한테 들었어. 내일부터 점심 먹고 집에 온대.’하고 대답한다.
“우와~ 우리 윤이 선생님 이야기 정말 잘 들었네? 나도 교감선생님한테 얘기 들었지. 학교가 급식 맛집이래.”
아이는 오늘 둘째 날 등교를 했다. 원래는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 교실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비가 와서 학교 건물로 바로 들어갔다. 교실을 못 찾을까 집에 돌아와 걱정하던 아이라 학교 건물 안에서 교실을 제대로 찾았을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들(아이가 못 찾으면 주변에서 당연히 도와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이 엄마의 입장에서는 헤어지는 순간 어리버리 교실을 못찾아 당황한 아이의 모습에 짠하다(매 순간 이런 짠한 마음이 든다면 정말 좋은 엄마일 수 있을 텐데 늘 가정 이외의 공간에서만 짠한 마음이 드는 게 문제다). 그래도 교사이자 엄마로 앞으로의 일들도 ‘친구들에게 우~ 밀리고 선생님께 이끌리다 보면 곧 적응해 있겠지’ 하고 긍정으로 생각해본다.
딸아,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해. 걸어가는 걸음 하나, 하나마다 엄마의 응원과 걱정이 담기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잘 자라준 것처럼 말이야.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넌 주장하지만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늘 너를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