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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r 27. 2024

초등학교 참관수업을 다녀왔다

내 아이는 부적응 아이일까?

 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3주만에 학교에서는 참관수업을 진행했다. 어제 신랑과 나는 아이의 학교에 다녀왔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년별로 8~9반까지 있는 과밀학급이다. 1학년이 30명, 3학년이 26명이다. 나는 1학년인 둘째 반에, 신랑은 3학년인 첫째 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교의 수업은 교과가 정해져있어서인지 학급마다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유치원은 반 아이들과 교사의 특성이 혼합되어 반마다 개성있는 수업을 하곤 한다). 유치원 교사로 참여수업 또는 참관수업을 할 때의 기억때문인지 초등학교의 수업은 [선생님을 따라 오세요~!]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무리에서 잠시 이탈하면 문제가 있는 아이로 보여지게끔 생각되었다. 유치원 수업에서는 수업에 이탈하는 아이를 챙기는 것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는 반면, 초등학교의 수업에서는 명확한 기준을 다시금 아이들에게 안내하는 것에 신경을 기울인다고 느껴졌다.

 1학년 수업에서는 가위로 종이를 오리고 풀을 붙여 왕관을 만들었다. 가위와 풀을 사용하는 방법이 활동 전에 안내되었는데 가위는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잡는다거나 가위가 아닌 종이를 움직이며 자른다는 것, 풀칠을 할 때는 중간이 아닌 가장자리부터 발라야 한다는 것 등은 알쏭달쏭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꼼꼼하고 안전하게 자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인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나는 학교의 일에 순응하고 따르기에 아마 다음 풀칠이나 가위질에서 한 번 쯤은 아이에게 다시 말해줄 지도 모르겠다(유치원 교사로서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위 수업일 뿐이지만 아이 주변에서 관찰하는 엄마의 마음은 바쁘고 두근거리는 아이의 마음이 투영되어 함께 조바심이 났다. '시간이 다 되가는데 이제 그만 꾸미면 좋겠다', '선생님이 종이를 먼저 버리고 풀을 붙이라고 했는데', (2분 남았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아이의 왕관을 보고는 더 초조해졌다. 이마저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자꾸 마음이 쓰인다)..., 선생님이 주는 수많은 지침들에 엄마인 나도 같이 기억하고 체크하게 되었다(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이 지침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테지만 그 시간 안에서는 하나의 기준과 같아서 꼭 지켜야만 하는 규칙같이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은 부끄럼이 많다. 부모가 모두 낯선 상황을 힘들어하고 적극성이 없다보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언제나 '기다림'의 포지션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과한 낯가림이 타인의 눈에 비칠 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변화시켜줄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극명하게 대조될 때는 원래 잠들어있던 걱정이 뾰족하게 튀어올라온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가 성장할 있는 시간을 주는 기다림이다. 책이나 다른 가정의 고민을 상담할 때면 '기다려 주세요'하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 안에 내가 함께 속해질 때는 머리로 앎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다. 실천은 앎보다 마음과 가까운 같다. 머리로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지'하고 번이나 다짐해도 마음은 '조금 푸쉬하면 알아듣지 않을까?'하고 삼키려던 말을 입으로 끌고 온다. 30명의 아이들이 모두 장래희망을 발표했는데 우리 아이는 입만 몇 번 움직일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목소리는 작지만 이야기는 했습니다."하고 아이를 들여보냈다.

 수업이 끝나고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겨우 숨긴 채 '많이 긴장됐지? 그래도 꼼꼼하고 끝까지 하려고 하는 모습이 대단하더라'하고 말했다(그러나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불안함이 아이에게 전달되었을지도). 수업이 끝난 후 아이와 헤어지는데 엄마를 따라 집에 가고 싶다고 흐느끼는 딸의 모습을 보니 딱하고 어리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사물함 정리를 하고 밝은 얼굴로 선생님을 보는데 내 아이는 뒷 문을 응시하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고 신랑과 점심을 먹으며 숨겨두었던 불안들을 뱉어냈다. 한참의 이야기 끝에 우리는 '우리도 사회 생활 하고 있잖아. 기다리는 말고는 있는 있나?'하는 말로 불안을 완만하게 다듬었다.

 집에 돌아오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잠시 울고는 진정되어 지금은 웃고 잘 있다는] 문자가 왔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 방과후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방과후교실을 못찾아 담임 선생님과 왔었다는 전화가 왔다. 이번이 처음으로 혼자 방과후교실을 찾아가는 날이었는데 '못찾을 수 있지' 생각이 들다가도 다음 주에도 아이가 헷갈려하거든 방과후선생님한테로 문자를 달라는 말씀을 듣고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도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닐 텐데 어제 참관수업을 다녀온 후로 나는 불안하다.

[곧 자라겠지, 곧 학교 교실의 위치도 더 잘알게 될테고 조금씩 적응하겠지]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작은 주문을 조금씩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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