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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r 16. 2024

초등3학년 교과서를 보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다. 주변 친구들이 말했다. 3학년부터 시작이라고. 병설 유치원의 교장선생님도 말씀하셨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모두 천재라고 생각하다가 3학년을 기점으로 공부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고. 그렇게 3학년은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은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별 의미가 없다. 막연히 제대로 된 교과가 생기기 시작한다더라, 알고 있는 것을 학문 언어로 접한다더라 등등 카더라는 익히 들었지만 1, 2학년과 별 차이가 없겠지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겨울방학과 봄방학은 쉼과 놀이로 빠르게 흘러갔다.


휴직을 하고 2월 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아이의 3학년 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쿠팡에서 자습서를 샀다. 다음날 도착한 자습서의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국어에는 동시와 짧은 이야기글, 감각적 표현이 있었다. 사회는 고장을 배우기 시작하며 백지도, 고장의 옛이야기 등을 다루었고 과학은 물체와 물질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띠로리~~~...

'갑자기 이걸 다 배운다고? 이걸 나도 초3에 배웠었나?'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아이를 붙잡고 각 과목의 1단원을 함께 봤다. 그러면서 이걸 집에서 함께 보고 배워가는게 옳은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서 자세히 배우라며 대강 훑고 지나갔다. 학교와 집에서 배우는 정도에 차이를 두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어제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고장에 대해서 배우는데 나는 동대구역을 말했어. 근데 어떤 친구는 생각이 안나서 울었어. 근데 걔는 태권도 검정띠에 2단이래!"

아이의 말을 듣고 우는 것과 태권도의 부조화를 엮어 생각하는 모습에 웃었다. 그리고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공부고 다양한 감정을 겪어야 마음도 자란다는 걸 알지만 나는 왠지 조급증이 들었다.

"집에서 먼저 안보고 갔으면 어땠을 것 같아? 2학년처럼 괜찮겠더나?"

"음... 쫌...이해 안되는 정도?"


오늘 아이의 자유시간에 함께 자습서를 폈다. 그러자 저절로 한숨이 났다. 아이가 읽고 가야할 내용들이 제법 많아보여서다. 산다는 건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인가? 쉼이 사라져가는 아이의 일과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엄마의 마음때문인가?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생각들이 만나고 흩어졌다. 그리고 놓친 무언가를 희미하게 찾았다.


"근데 이걸 해야하는 거라 생각하면 답답한데 사실 인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연구들을 싹 정리해서 알려주는 비법서 같은 거라 생각하면 또 엄청 설레는 일이지 않을까?"

잠시 아이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지난 번에 우리가 읽은 원시인 책에서 기록이 있는 시간보다 없었던 시간이 훨씬 길다고 했잖아, 어떤 엄청 똑똑한 원시인이 있었어, 그 사람이 궁금한게 생겨도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알 방법을 모르거나 알았더라도 확인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쳐. 그럼 그 사람이 이 교과서를 보면 얼마나 보물이라 생각하겠어? 교과서는 진짜 연구를 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 엄청 정리를 잘 해놓은 책이거든, 그러니까 이걸 알면 여러 사람들이랑 상식을 나눌 수 있는거지."

내 생각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과학은 자연을 연구한 거고 사회는 사람들의 약속이나 규칙 같은 걸 연구하고...어쩌고 저쩌고...


휴직 중이라 아이 곁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생각하는 엄마의 머리는 공부는 엄마가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야하는 거지만 현실 엄마의 머리는 (아이 공부=엄마 공부)의 공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2학기 복직해야하니 한 학기 동안 혼자 습관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전히 아이의 교과서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공부하는 것을 설레는 일로 바뀌는 마법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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