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이야기하다보면 언제 이만큼 마음이 자랐을까 신기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아팠다. 감기에 심하게 걸리고 곧이어 장염이 왔다. 누구나 당연히 아플 수 있지만 가족이 아플 때의 걱정되는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엄마는 '세월에 익숙해져야 하고 엄마도 몸이 약해지는 걸 받아들여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자연스러운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르니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흐르는 물에 휩쓸리지 않고 물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힘겨움이 몸에 느껴지는 듯 초조했다.
일하는 딸은 여러 곳에 미안함이 많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쓰는 것 같아 미안하고, 대신 아이를 돌봐주시는 엄마한테 특히 미안하다(그녀는 내 마음이 불편할 것까지 마음쓰며 그러지 않길 바랄테지만...). 내 나이의 노래는 아니지만 나는 '가는 세월'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소중한 순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묶어둘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을까 하다가도 문득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는 생각이 들며 잃어버려질 것들로 인해 불안에 휩쓸린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은 고집쟁이에다 예민 보스다. 어릴 때는 '인형 닮았네'라고 하면 '나는 인형 아닌데 왜 인형 닮았다고 그래!' 하며 화를 내고 내가 다른 아이를 보고 '예쁘게 생겼다'하면 '그건 마음 속으로만 말하지 (샘나게) 왜 자기 앞에서 말하냐'한다. 작은 것에 웃고 작은 것에 우는 아직 어린 딸은 요즘들어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어떤 날은 어른스럽게, 어떤 순간은 3살 아이같이 다채롭다.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엄마의 잔병들을 보며 그녀에게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주어지기를 바랬다. 방학이 가까워지며 안도감도 진해졌다. 오랜만에 딸과 같이 누웠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는
"엄마,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야. 왜냐하면 내가 만든 걸 잃어버릴까봐 TV앞이나 이런데 잘 보이는데 소중하게 보관해줘. 그리고 내 방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우리를 위해서 요리도 맛있게 해주거든."
"할머니가 왜 그렇게 해주시는것같아?"
"우리 잘 살아라고."
ㅎㅎㅎ
"왜 우리 잘 살아라고 그렇게 해주실까?"
"왜냐하면 엄마가 할머니 딸이고, 내가 엄마딸이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고."
"근데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는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예민하다고만 생각하던 딸내미 마음이 참 깊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새로운 안경이 생겼다.
"엄마, 엄마는 요리를 잘하잖아. 그러니까 그럴 때는 엄마가 요리를 좀 더하고 나는 학교에 갈 때는 혼자가고 올때는 무서워서 어쩔수없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와야되는데~ 더 크면 올 때도 혼자 올 수 있을 것 같애."
그러고보니 엄마가 몸살이 나기 며칠 전, 내게 말했다.
"닌 언제까지 엄마만 믿고 있을꺼고? 일한다고 나중에 퇴직하고나면 집안 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아나? 니는애들 키우고 집을 가꾸는 재미도 알고 살아라. 엄마가 해주는게 니한테 다 좋은게 아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힘듦보다 내가 살림을 못해 앞가림을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큼을 알기에 나는 변명도 하지 못했다. 미리 세심하게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들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늘 어리다고만 생각하던 아이가 나보다 어른스럽게 우리의 역할을 다시 이야기할 때, 나는 진한 사랑과 행복을 느꼈다. 이번 방학은 짧은데, 그동안이라도 엄마가 준 미션인, 집을 가꾸는 재미에 도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