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Jul 26. 2022

남 부러울 것 없는 육아휴직자 이야기(2)

휴직자에게 승진이란?!

# 2. 휴직과 복직, 복잡한 셈법(금전과 승진)

초임시절, 우연히 동료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승진'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모두 '노~! 관심'이라했다. 그때는 단설유치원이 없어 평교사로 퇴직은 당연해보였다.


나의 긴 휴직 기간동안 우리 지역에는 단설유치원이 제법 생겼다. 모두 평교사였던 유치원 선생님들 중 누구는 관리자가 되고 누구는 장학사가 되었으며 우리 집단에도 계급(?)이 생겼다. 너무나 안타깝게새로 생긴 단설유치원의 분위기는 변화하려는 사회분위기와는 분명히 역행하여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침묵하게하고, 교사들은 상명하복 문화에 지배당하는 듯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상하게도 관리직에만 올라가면 그 인물에 대한 180도의 다른 면모들이 담긴 소문들이 떠돌았다. 교사들 사이에서 "그 자리에만 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명제는 하나의 법칙이 되었다.

[출처. 픽사베이]

휴직에 들어오기 전, 이른 나이에 교장 자리에 오른 교장선생님께서는 유치원에 찾아와

 "나는 동료나 후배한테 결재판들고 고개숙이면서 이거 해 주십시오~ 그렇게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교장자리까지 가야지 생각했어요. 선생님도 교사의 길로 들어왔으면 기관의 최고 높은 자리까지는 가봐야하지 않겠어요?"하고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병설유치원은 주로 소외되어 있기에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 말 속에 들어있는 현실적인 상상은 승진을 향한 두 갈래의 길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다.

'동료나 후배교사가 승진을 해도 내 마음은 괜찮을까? 그 밑에서 일할 수 있을까?'

휴직을 (길게) 하는 자, 승진을 포기하라.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인 진실이다.

내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동안 누군가는 승진점수를 따기 위한 자리를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조금 자라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복직과 휴직의 기로에서 현실적인 득과 실에 대해 따져본다(가장 큰 부분은 금전과 승진에 대한 확실한 포기다).


결정의 책임을 쓱 떠넘겨볼까하고 신랑과 친정부모님의 의견을 묻는다. 현명한 그들은 대답 대신 선택을 오롯이 내 몫으로 다시 돌린다. 내 선택의 결과에 본인들의 생활을 맞추겠다하며 내 인생임을 분명히 알렸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결국 나는 휴직을 연장하기로 했다.


사실 이 선택은 아이들이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하고 말해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아직은 내가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다. 유치원의 하원시간(아침에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은 마치 1년이나 기다렸다가 이제서야 만나는 느낌으로 부모를 기다린다)마다 우리아이들과-엄마의 매일 극적인 만남을 내가 그러지 못함을 부러움으로 채우기 싫었다.

아이의 시간에 천천히, 오래 머무르며 더 자주 마주하고, 웃고, 싸우고, 울고, 장난치고 싶었다. 후에 아이들이 자랐을때 웃으며 추억할 "너 어렸을 때 우리 같이~~~어쩌고 저쩌고"의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날에 승진한 누군가들을 보며 부러울 때가 때때로 찾아오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눈을 감는 날에는 아이와, 가족의 순간에 함께있었음이 다행이라 여겨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 욕심으로 휴직을 연장했다. 그리고 승진하지 못해도 괜찮아질 무언가를 찾기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면접에서 교수님은 진학이유들을 듣고, '로맨틱한 이유는 잘 들었고 이제 현실적인 이유를 말해볼까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정말 그게 전부였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래서 남 부러울 것이 없다.

[출처. 픽사베이]


(평교사로 쭉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살아가며  다른 꿈들생기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방학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