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친한 선배와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뭐 먹을지 고민하면서 분식집에 가는 것은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매운 떡볶이에 튀김 어묵을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몰랑몰랑한 떡에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튀김 어묵을 같이 먹는 건 진짜 행복이다. 심지어 매운 떡볶이 국물에 쫀득 고소 튀김 어묵을 찍어먹으면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키야...!!
아무튼 그래서 분식집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선배랑은 쓰잘대기 없는 이야기부터 심오한 이야기까지 나누는지라,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넓다.(가끔은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번에 앉아서는 사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 다 사업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기 때문에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서로 사업은 잘 돼 가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은 선배를 만나기 전, 하루 종일 코딩만 하다가 나왔다. 내가 만든 제품에 통신 오류가 생겨 하루 종일 고생했다. 정말 간단해 보이는 문제였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서도 해결하지 못해 상당히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그래서 선배에게 신세한탄을 하면서 요즘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야기했다. 투정은 부리긴 했지만, 그 선배도 나도 이 문제는 내가 끝까지 노력해서 임계점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꾸준한 실천과 성공만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배는 고맙게도 내게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지만 서로가 그 말이 내게 진정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었는데 선배한테 구체적으로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니 진짜로 내가 요즘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갑자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수정하고 있던 제품은 여전히 작동을 안 하고 있고, 나는 무기력하다. 이때 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자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까먹고 리셋이 되기 때문에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조금 삐뚤어져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게임을 켰다. 내가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LOL에 접속하고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웬일로 이번에는 게임이 잘 풀려서 재미가 있었다.
나는 한 가지 버릇이 있다. 뭐 하나 재밌으면 밤을 세서라도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래서 게임을 한 번 했다 하면 기본적으로 5시간 이상 한다. 5시간도 자제해서 겨우 멈추는 것이지, 브레이크 놓으면 쉬지 않고 12시간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8시간 정도 쉬지 않고 게임을 했다. 사실 이번에는 브레이크를 심하게 넣었다. 일부러 게임하면서 졸려서 자기 위해 맥주를 먹으면서 플레이했다. 하지만 게임의 각성효과는 맥주를 가볍게 이기고 말았다. 그래서 동이 트는 걸 보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시간이 지나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기상 시각은 오후 4시, 일탈 한번 제대로 했다. 나는 늦게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한다. 늦게 일어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날도 먹고 자고 유튜브 보기를 반복했다. 너무나도 재밌어서 절대로 안보는 예능 채널도 보고, 게임 방송 채널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쉬고 있지 않고 있었다. 유튜브는 재밌지만,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 하루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무기력에 의해 며칠, 몇 주를 이렇게 보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 계속 유튜브를 보다가 어떤 스트리머의 '새벽에 노가리 까는 asmr' 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내용은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용이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쓸데없었다.
이 쓸모없는 영상은 나를 '와 이렇게 쓸데없을 수가 있나'라는 대사와 함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미치도록 쓸모없는 내용이었고, 이걸 듣고 있는 나도 정말 쓸데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당장 책장으로 달려가 며칠 전에 샀던 책을 꺼내집었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 팀 페리스 지음> 이 책을 꺼내 들었는데, 지금 상황에 딱 맞지 않는가? 돈을 정말 잘 버는 팀 페리스가 고작 4시간만 일한다고? 그것도 하루에 4시간이 아니고 매주 4시간? 돈 잘 벌고 싶고 멋진 일을 하고 싶지만, 정작 쓸모없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책 같았다. 그리곤 새벽부터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가 새벽 5시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본질은 2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레토의 법칙'과 '파킨슨의 법칙'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어떠한 결과의 80%는 어떠한 원인의 20%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부의 80%는 상위 20%의 부자가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매출의 80%는 우리가 처리한 업무의 20%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반대로 별 의미 없는 업무의 80%는 고작 매출의 20%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팀 페리스는 쓰잘대기 없는 80%의 업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지는 비밀이다ㅎㅎ 책을 사서 읽길 바란다. 다 쓰기엔 나의 전달력도 좋지 않고, 내 손가락만 아프다. (사실 이것도 불필요한 80%를 버리기 위해 팀 페리스에게 내 글을 맡긴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마감일 효과라도 불린다. 아무리 짧은 마감일 안에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해낸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조금은 터무니없는 마감일을 설정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밀도가 높게 처리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본질적인 2가지 법칙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스킬들도 알려준다. 진짜 꿀팁 가득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는데 내가 어찌 무기력한 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 권을 꼼꼼히 보면서 하루 만에 완독 했다. 새벽 5시부터 읽기 시작해서 10시쯤에 운동(클라이밍)을 하면서 쉬는 타임 동안 짬짬이 보면서 끝까지 다 봤다. 역시 팀 페리스 책은 동기 자극제야... 오직 책 한 권으로 나는 무기력을 회복했다.
클라이밍을 다 하고 나서 집에 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난 뒤, 그냥 기절했다. 하룻밤을 세고 운동을 오랜만에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나는 일어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책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