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형의 내가 마주하는 당신들의 모습
2025년 9월 20일 11시 30분
나는 4살 무렵부터, 부모 없이 낯선 친척들의 손을 거쳐 가며 자랐다. 그들은 내게 불쌍한 부모를 위해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강요했다. 거뭇거뭇한 어른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누런 이빨들 사이로 억세게 움직이는 혓바닥. 그 안에서 찌든 담배향이 새어 나왔다. 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 낯선 집에서 마저 쫓겨날지도 모른다. 낯선 집 밖의 낯선 길거리는 더 무서웠다. 그래서 항상 어른스러운 척을 하며 자랐다. 엄마 어서 절 데려가주세요. 절 버리지 마세요. 그렇게 어찌어찌 자라던 나라는 존재를 알고는 계셨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3년 후 어머니는 날더러 죽고 싶다고 하더니, 갑자기 행복한 가족놀이를 시작했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모든 게 진절머리가 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준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 어딘가 몇 군데 고장 난 어른으로 자라났다. 운이 좋게도 그런 나에게 친절히 다가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꽤 잘 맞았고, 금세 친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갈 때 즈음, 어느샌가 또다시 나는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를 흉내 내며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이 미성숙한 행동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집착‘이었다. 절 버리지 마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함을 느낀 나에게 그는 선을 그었다. 지금 되뇌어보면 아주 가볍고 투명한 최소한의 선. 그때 나는 그 선이 한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또다시 혼자가 된다는 망상에 사로 잡혔다. 오싹하고 두려운 이 감정. 망상은 확신으로 바뀌고,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혔다. 당신도 나를 혼자 두고 떠날 거죠? 집에서 쫓아낼 거죠? 나는 그에게 화를 냈다. 성숙하지 못한 방법들로 불만을 표출했다.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차가운 그의 태도가 되돌아왔다. 혼자 방에 처박혀 내가 뱉은 말들을 되뇌었다. 내가 역겨웠다. 생각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더 깊숙이 끌어내렸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금 같은 나는 반복되어 왔었고, 피곤해진 사람들은 늘 내 곁을 떠났다. 역시 다음엔 더 필요한 사람이 되야겠어. 이번에는 이 사람 차례였다.
다 끝났다. 이번에도 내가 망쳐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사람은 단단했다. 아니 오히려 무심한 쪽이었을까. 타인의 결함은 타인의 문제일 뿐, 자신과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면 연락을 해왔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감정적으로 폭주하던 나를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흘렸다. 아니, 상대는 가만히 있었는데, 나 혼자 달려들다가 넘어진 꼴이었다. 우스웠다. 대상을 잃어버린 나의 분노와 절망은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 홀로 남겨진 어둡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가 싶더니 드디어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외로움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채 자라난 나.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관심을 구걸하게 된 불쌍한 나. 그리고, 원하는 대로 타인의 관심을 얻지 못했을 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적대시하게 되는 성숙하지 못한 나. 이 역겹고도 한심한 존재를 30년이 넘어서야 드디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더럽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이 무척 고마웠다.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던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필요한 건 타인의 관심과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혼자 방구석에서 고민한 반성의 말들은 잔뜩 쌓이고 쌓여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무거운 것들을 평소답지 않게 혼자 속으로만 삼켰다. 나도 함께 가벼운 선을 그으며 관계를 가볍게 했다. 실없는 농담들로 낄낄대며 다시 함께 웃을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불안을 극복하고, 타인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